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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인터뷰①] 김소진 '여자 송강호? 사실은 송강호를 닮고 싶은 여자'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미스테리한 여배우가 등장했다. 적재적소 등장해 관객의 허를 찌르고 홀연히 퇴장한다. 군더더기 없지만 짧은 순간에도 진한 페이소스를 담뿍 담아 존재감을 드러낸다. 배우 김소진(38)이라는 이름보다 '더 테러 라이브'(13, 김병우 감독)의 이지수 기자, '더 킹'(17, 한재림 감독)의 안희연 검사로 관객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매 작품 캐릭터 그 자체가 됐던 김소진. 이쯤 되니 '여자 송강호'라는 수식어가 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25일 열린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가장 각축을 벌였던 부문 중 하나인 조연상. 올해엔 '더 킹'의 김소진이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그야말로 연기 신(神)들의 경합이었던 조연상에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영예를 얻은 그는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올해 최고의 '신 스틸러'로 등극했다.

청룡영화상이 끝난 뒤 본지와 만난 김소진. 그간 매체와 접촉이 없었던 그는 영화배우로서 첫 매체와 인터뷰에서 '얼떨떨'한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청룡영화상이 끝난 후 2주가 지났지만 수상의 기쁨은 온전히 받기엔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후문.

"정말 겸손이 아니라, 수상 후 미안함과 고마움 등 복잡하고 미묘한 기분이 계속됐어요. 정말 좋은 상을 받고 주변에서 많은 칭찬을 받으면서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온전히 제가 받기엔 벅찼어요. 제 연기를 볼 때 '왜 저렇게 연기했지?' 싶은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호흡을 맞춰준 동료 배우들, 감독, 제작진 등 제 단점을 감싸 안아준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목격하게 된 순간이 늘 있었는데 마치 제가 '더 킹'의 대표처럼 상을 받게 돼 민망하기도 했죠. 저라는 배우는 대중에게 아직 낯선 배우인데 이런 절 끌어올려 주고 도와줘 극에 녹아들게 만들어줘 진심으로 감사해요. '더 킹'을 함께했던 모든 분께요."

언급한 대로 사실상 김소진은 충무로에 뿌리를 내린 정통 영화배우는 아니다. 학창시절 영상제작을 전공하던 중 우연히 연극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를 보고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됐고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연출 전공으로 편입, '문제적 인간 연산' 배우로 연기 첫발을 디뎠다. 중앙대학교를 졸업한 뒤 1년간 프로젝트 그룹 아리코리아 소속으로 해외 공연을 다니며 내공을 쌓았고 그 뒤 연기의 메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다시금 연기를 공부했다. 돌고 돌았던 김소진의 연기 인생. 2009년 연극 '이상, 열 셋까지 세다'로 본격 연극배우로 데뷔해 무대의 실력파 배우로 거듭났고 2010년 개봉한 '초능력자'(김민석 감독)를 통해 충무로에 입성했다.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 나갔던 김소진. 등장할 때마다 관객으로부터 "저 배우 누구야?"라는 궁금증을 유발했던 김소진. 하지만 이러듯 뜨거운 관심 속에서도 김소진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늘 한 발짝 떨어져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서툴고 부족한 연기인데 관객이 과분한 사랑을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연극 무대를 오래 서다 보니 영화는 제가 익숙한 동네가 아니에요. 너무 조심스럽고 두렵기도 해서 선뜻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아직도 적응이 필요한 상태고요. 소속사에 들어가는 것도 아직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이라 좀 더 천천히 여유를 두려고요. 특히 온전히 제힘으로 관심을 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죠. 그간 관객과 소통을 못 한 지점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부담도 컸고 제가 가진 것보다 더 좋고 크게 포장이 되는 것 같기도 해서요.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아 반응을 일부러 안 들으려고 했죠. 또 제 성향이 빠른 대응을 잘 못 해요. 적응하는 데까지 천천히 시간을 두는 편이라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 영화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고 편해지고 점차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앞만 보고 달렸던 부분이 조금 시야가 넓혀져 주변도 볼 수 있게 됐고요(웃음)."

'체포왕'(11, 임찬익 감독)에서 마포 여경으로, '퀵'(11, 조범구 감독)에서 매니저 팀장으로, '더 테러 라이브'에서 윤영화(하정우)의 이혼한 아내 이지수 기자로, '스파이'(13, 이승준 감독)에서 상황실 요원으로, '우는 남자'(14, 이정범 감독)에서 주인공의 친구 미진으로, '신의 한 수'(14, 조범구 감독)에서 주님(안성기)의 딸 영숙으로, '두근두근 내 인생'(14, 이재용 감독)에서 김작가로, '퇴마: 무녀굴'(15, 김휘 감독)에서 진명(김성균)의 자살한 연인 수혜로, '도리화가'(15, 이종필 감독)에서 어린 진채선(배수지)의 엄마로, '더 킹'에서 걸크러시 안희연 검사로, '재심'(17, 김태윤 감독)에서 이준영(정우)과 이혼 소송을 펼치는 아내 강효진으로, '아이 캔 스피크'(17, 김현석 감독)에서는 옥분(나문희)의 공개 청문회를 돕는 금주로. 짧은 등장임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김소진. 김지운 감독은 그를 향해 '여자 송강호'라는 애칭을 붙이기도 했다.

"'여자 송강호'라니 너무 과분하고 부끄러운 수식어죠. 하하. 저도 김지운 감독이 왜 이런 과분한 수식어를 붙여 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 짧은 생각엔 '여자 송강호'라기 보다는 '송강호를 닮고 싶은 배우'가 더 적절한 것 같아요. 내년에 개봉하는 '마약왕'(우민호 감독)에서 이두삼 역을 맡은 송강호 선배의 부인 성숙경 역을 맡았는데 정말 '대박'이었죠. 24시간 연기만 생각하고 연기에 빠져 사는 진짜 배우였죠. 작품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즐거워하고 동료들과 촬영했던 이야기를 이야기하면서 늘 성장하려 노력하세요. 후배들이 잘한 부분은 백번이면 백번, 입이 닳도록 칭찬해주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 잘 어우러져 조화롭게 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이었죠. 아름다운 분이세요. 비록 제가 '여자 송강호'가 될 수 없겠지만…, 어휴 제가 어떻게 감히(웃음). 못해, 못해요! 주변에서 '송강호처럼 연기하잖아요'라고 하면 단언컨데 '그건 아니에요. 제가 송강호 선배 옆에서 봤는데, 전 확실히 못해요'라고 말할 거에요. 하하. 요즘은 조금 욕심내서 송강호 선배의 생각과 모습을 한번 닮아가보려 노력해본다면 제 삶에, 혹은 연기에 분명 좋은 변화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한때 배우로서 자신없어 하던 제가 다시 용기를 내고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에너지를 받게 됐죠. 분명 180도 바뀔 것 같은데, 쉽지 않네요(웃음)."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