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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인터뷰②] 최희서 '이제 일본인 아닌 유창한 한국어 연기하고파'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앞으로 목표는 관객에게 유창한 일본어 연기가 아닌 유창한 한국어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하하."

시대극 '박열'(이준익 감독,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작)에서 일본 배우라 착각할 정도로 완벽한 일본어 연기를 구사한 배우 최희서(30). 극 중 가네코 후미코로 변신한 그는 박열(이제훈)과 첫 만남에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소개하며 동거를 제안하는 당돌한 일본 여자 가네코 후미코에 오롯이 빠져들어 존재감을 드러냈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인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를 반대하며 항일운동에 나선 여성으로, 조선인 학살 사건의 희생양으로 검거된 박열과 함께 투쟁하기 위해 스스로 수감된 것은 물론 박열과 함께 대역죄로 기소되는 여성이다. 일본 제국의 갖은 회유와 압박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확고하게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신여성이었던 가네코 후미코. 최희서가 곧 가네코 후미코였고 가네코 후미코가 곧 최희서였을 정도로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그래서였을까 최희서는 지난달 25일 열린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 수상 소감으로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만큼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최희서에겐 '박열'은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작품이자 캐릭터였다. 8년의 무명을 끝내준 '인생작' 그리고 '인생캐릭터'를 만난 셈. 최희서라는 이름 석자를 충무로에 알릴 수 있었던 '신의 한 수'이기도 했다.

"앞으로 가네코 후미코만큼 강렬한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물론 저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너무 깊게 박힌 캐릭터라 다음 작품에서 실망감을 안길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있죠. 하지만 극복하고자 애를 쓰고 싶지는 않아요. '박열'을 지우기 위해, 가네코 후미코를 지우기 위해 더 강렬한 작품, 센 캐릭터, 과한 변신 등은 시도하지 않으려고요. 제게 가장 잘 맞는, 비록 가네코 후미코보다 존재감이 약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연기한다면 언젠가는 가네코 후미코만큼 좋은 캐릭터를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로 가네코 후미코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 거죠(웃음)."

최희서의 인상적인 수상소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 중 한 구절을 인용한 것 역시 화제를 모은 것. 수상 당시 최희서는 "(가네코 후미코의) 자선전을 읽으면서 너무 강렬해서 이준익 감독에게 이 대사를 마지막 대사로 쓰고 싶었다고 제안했던 대사를 함게 공유하고 싶다. 산다는 것은 그저 움직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것이 비록 죽음을 향한 것이더라도 그것은 삶의 부정이 아니다. 긍정이다. 나 또한 매 순간 제 의지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솔직히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상 소감을 생각했어요. 혹시 만약 내게 영광이 주어진다면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해 마음속으로 곱씹었죠. 제게 언제 또 주어질지 모르는 순간이니까 만약 가능하다면 최희서라는 배우가 어떤 생각을 가진 배우인지 말하고 싶었어요. 청룡영화상은 영화상 중 가장 엔딩을 장식하는 시상식이고 영화인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는 자리잖아요. 가네코 후미코로 상을 받게 되는 자리라 그녀의 자서전 글귀를 꼭 말하고 싶었어요. 하하."

수상 소감까지 준비했던 최희서였지만 함께 오른 쟁쟁한 후보들 때문에 사실상 수상 기대는 높지 않았다는 후문. 겸손이 아니라 독립영화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여배우들이 총출동한 만큼 수상 욕심은 많이 비운 상태였다고. 이번 수상은 전적으로 '행운이 8할'이었다는 최희서다.

"함께 오른 후보들 작품을 모두 봤어요. 워낙 독립영화계에서는 유명한 여배우들이었는데 함께 후보에 올라 긴장했던 것도 사실이죠(웃음). 특히 연기력이 출중한 이상희 언니, 이민지는 제가 봐도 멋진 실력을 가진 여배우들이어서 당연히 전 신인여우상을 못 받을 거라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이런 좋은 여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기도 했죠. 하하. 누가 받아도 이견이 없었던 후보들이었는데 제가 맡은 가네코 후미코가 비중도 많았고 캐릭터 색깔도 강해서 영광을 얻은 것 같아요. 전적으로 운이 컸죠.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하는데 정면에 이준익 감독이 '아빠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봐주시더라고요. 그저 감사했어요. 수상소감은 이준익 감독에게 받치는 말이기도 했고요. 가끔 이준익 감독 주변에 이병헌 선배, 김윤석 선배가 보여 흔들리는 순간도 있었지만요. 하하."

이렇듯 최희서에게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된 제38회 청룡영화상. 마지막으로 그에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의 의미를 물었다.

"제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은 앞으로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슬럼프가 찾아올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보약인 것 같아요. 비타민처럼 오랫동안 두고두고 꺼내 먹으면서 저를 다시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지금도 연기가 안 풀리거나 고민이 되면 트로피를 보며 힘을 얻어요. 또 이런 값진 상을 받게 해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다시 떠올리게 하죠. 다음 스텝은 어떤 작품이 될지 모르겠지만 또 좋은 작품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드리고 싶어요. 물론 다음 작품에서는 유창한 한국어 연기로 찾아뵙고 싶네요. 하하."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