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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인생 버킷리스트' 다 채운 김사니 '지도자, 준비됐을 때 하겠다'

'국가대표, 연봉 퀸, 최고의 세터, 해외 진출.'

서울 추계초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김사니(36·은퇴)가 일기장에 적은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였다. 현역선수로 활동한 지난 18년간 모두 이뤘다. 국가대표는 서울 중앙여고 3학년 시절부터 발탁됐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대표팀 주전 세터로 활약했다. '연봉 퀸'은 프로 기록이 집계된 2005년 이후 세 차례(2009년, 2011년, 2012년)나 차지했다.

특히 김사니를 이도희 강혜미와 함께 최고의 세터로 꼽는데 이견이 없다. 2012년에는 세터에게 치명적인 슬랩병변(상부 어깨 관절 와순 부상)을 앓았고 왼손잡이로 다소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술과 프로의식, 승부욕만 따지면 지도자들이 손꼽는 최고의 세터였다. 2013년에는 해외진출의 꿈도 이뤘다. 아제르바이잔의 로코모티브 바쿠에서 뛰었다.

여자배구의 살아있는 레전드가 코트를 떠난다. 김사니가 18년간 정든 유니폼을 벗고 배구 해설위원으로 '제2의 인생'을 택했다. 김사니는 18일 화성체육관에서 열릴 현대건설과의 2017~2018시즌 도드람 V리그 홈 경기를 앞두고 공식 은퇴식을 갖는다.

미련이 있을 수 없었다. 김사니는 "여자배구 선수들의 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배구를 할 만큼 했다"며 당차게 말했다. 이어 "잠자리에 들기 전 사진첩에서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면 '아! 진짜 끝이 났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추억을 하게 될 뿐이지 미련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다 털어냈는데 은퇴 행사를 한다고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으니 갑자기 뭉클해졌다"며 웃었다.

현역시절 가장 기억나는 순간에 대해 묻자 기억을 오래 더듬지 않았다. 김사니는 "2014년 IBK기업은행으로 둥지를 옮긴 첫 해 우승이 기억에 남는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우승도 했고 MVP도 차지했다. 뜻 깊었다"고 회상했다.

지도자 러브콜도 받았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김사니에게 코치로 남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김사니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리고 확실한 소신을 드러냈다. "솔직히 아직은 지도자를 할 생각이 없다. 이 감독님께서 나를 위해 없는 자리를 만들어주시려고 한 부분에 대해선 감사하다. 세터 코치 제의가 오면 제고해보겠지만 준비 없이 지도자를 하고 싶지 않다."

올 시즌 V리그 여자부는 '여성 지도자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6팀 중 2팀을 여성 감독이 이끌고 있다. 지난 3년간 흥국생명을 V리그 명문으로 끌어올린 박미희 감독(54)에다 올 시즌 현대건설을 지휘하게 된 '명세터' 출신 이도희 감독(49)이 프로배구 사상 세 번째 여성 감독이 됐다. 한 시즌 두 명의 여성 사령탑은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다. 이에 대해 김사니는 "두 분 모두 그냥 감독이 되신 것이 아니다. 안팎으로 많이 공부하셨을 것이다. 준비 된 감독님들이다. 나도 해설을 하면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 설명했다.

김사니는 많은 후배들의 롤모델로 남게 됐다. 그는 후배들에게 프로의식을 강조했다. 김사니는 "기술적인 건 노력을 하면 좋아진다. 다만 운동선수로서 갖춰야 할 것은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여자배구 인기에 비례해 미디어 노출이 많아지면서 얼굴과 몸매를 가꾸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체력관리가 중요하다. 잘 먹고 웨이트 훈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힘을 길러야 국제대회에서도 외국 선수들과의 파워에서 밀리지 않게 된다"고 당부했다.

코트를 떠났지만 배구 현장의 끈은 놓지 않는다. SBS해설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김사니는 "시원시원한 해설을 하고 싶다"면서 "시청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설을 하기 위해 나도 많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