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은 등을 돌렸고, 지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불신이 똬리를 틀었다.
한국 축구는 천신만고 끝에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후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유럽 A매치 2연전, 반전의 불씨를 살릴 기회였다. 하지만 러시아에는 2대4, 모로코에는 1대3으로 완패하며 '혹시나'하는 마지막 희망의 잎새마저 허공에 날려버렸다.
'팬심'은 더 사나워졌고, 신태용호도 방향 감각을 상실한 분위기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대한축구협회는 어떨까. 시쳇말로 '노답'이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망각의 늪에 빠져버렸다.
한 달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9회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박수를 보낼 수 없었다. 그것이 진정한 애정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결과도 결과지만 적어도 아시아 지역에선 내용 또한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팬들의 눈높이였다. 하지만 축구협회의 반응은 달랐다. '안도'의 목소리가 더 컸다.
그리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라는 돌발변수가 터졌다. '히딩크 열풍'은 거부할 수 없는 한국 축구의 숙명이다. 팬들의 열광은 당연했다. '히딩크=한국 축구', 등식이 재성립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었다. 7월 A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신 감독을 2경기 만에 교체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축구협회는 히딩크 감독의 측근에서 나온 발언에 불쾌해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히딩크 감독을 둘러싼 논쟁은 더 뜨거워졌다. '미풍'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축구판의 하루는 히딩크로 시작해, 히딩크로 끝났다. 그 사이 신태용호는 허공에 붕뜬 상태로 길을 잃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축구협회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더 열고, 빠른 대응으로 초기에 매듭을 지었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만 낭비했다. 히딩크 감독을 6일에서야 만난 것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축구협회가 뒤늦게 히딩크 감독의 입장을 전달했지만, 불신의 벽은 해소되지 못했다.
지난 한 달은 어수선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비정상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평가전이 마치 '단두대 매치'로 둔갑했고, 신태용호의 발걸음도 한없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아니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경기는 경기다. 외부 여건이 어떻든 제 갈 길을 가야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팬들도 그런 모습을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태극마크가 부끄러울 정도의 '졸전'으로 불난 팬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월드컵 출전) 32개국 중 한국팀보다 못한 팀은 없다"는 안정환 MBC 해설위원의 한탄만 메아리 칠 뿐이다.
이대로는 안된다. 그냥 '세월이 해결해 주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시간은 결코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없다.
선수단도 선수단이지만 축구협회부터 바뀌어야 한다. 1보라도 전진하기 위해서는 2보 후퇴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 시계 제로의 현 상황에서 인적 쇄신은 불가피하다. 더 늦기 전에 칼을 뽑아야 한다.
인적 쇄신도 '대충'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인사가 만사지만 축구협회는 그동안 '회전문 인사'로 화를 키웠다. 재야에 있는 인사는 물론 박지성을 비롯한 젊은피에게도 길을 물어야 한다. 해외의 전문가들에게도 지혜를 구해야 한다.
위기를 외면하는 순간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은 점도 반드시 명심하길 바란다. 모바일 팀장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