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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경의 J사커]잇단 러브콜, '사령탑 한류' 왜?

'유럽 진출'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가 가져다 준 선물 중 하나다.

20년 전만 해도 K리거들의 유럽행은 '꿈'이나 다름없었다. 체계화되지 못한 행정과 무지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최순호의 유벤투스행 등이 그렇게 막혔다. '국부유출'이라는 웃지 못할 우려도 나왔을 정도다. 선수들에게 유럽행은 '언감생심'이었다.

탈출구는 J리그였다. 1993년 출범 초기 게리 리네커 등 유럽-남미 출신의 '황혼 스타'를 데려와 재미를 봤던 J리그 팀들은 거품이 꺼지자 '실력'에 '비슷한 정서'까지 갖춘 한국인 선수들을 찾기 시작했다. 고정운 하석주 황선홍 최용수 홍명보 김도훈 윤정환 유상철이 그렇게 대한해협을 건넜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K리거 출신 뿐만 아니라 고교-대학 선수들까지 J리그의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한국인 선수들은 J리그에 '저비용 고효율'의 대명사였다.

J리그에 이제 '지도자 한류'가 불 조짐이다. FC도쿄가 최용수, 감바 오사카가 홍명보 감독을 주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J리그 최고 공격수로 이름을 떨쳤던 최 감독, J리그 사상 첫 외국인 주장 시대를 연 홍 감독이 다시 일본 무대로 건너가 이름을 떨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J리그 외국인 감독은 브라질 또는 동구권 출신으로 국한됐다.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현역-지도자로 모두 활약하며 일본 대표팀까지 맡았던 '하얀펠레' 지쿠,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은퇴 후 지도자로 돌아온 드라간 스토이코비치가 대표적이다. 1999년과 2000년 베르디 가와사키를 맡았던 재일교포 2세 이국수 감독, 2003년 콘사도레 삿포로를 이끈 장외룡 감독 같은 예외도 존재했다.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었다. 저변에는 '지도자의 질은 아시아 최고'라는 일본 축구계 스스로의 자부심도 존재했다. 2010년 J2(2부리그) 사간도스를 맡아 일약 J1(1부리그) 강팀으로 성장시킨 윤정환 감독(현 세레소 오사카)의 등장은 그래서 '이변'으로 불렸다. 윤 감독의 성공에 이은 K리그의 아시아 정복이 이어지자 J리그의 시선도 달라졌다.

이번에도 핵심은 '정서'다. 한-일 축구는 반세기가 넘게 라이벌 의식을 이어오며 동반성장 했다. 특히 J리그 출범 뒤 수많은 한국 대표 선수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맹활약하며 본격적인 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최 감독과 홍 감독 모두 현역시절 최고의 활약을 펼친 덕에 현재까지도 J리그 인맥이 상당하다. 현역시절을 J리그서 보내며 쌓은 일본 축구, 선수에 대한 이해도는 다른 외국인 지도자들이 따라할 수 없는 '숨은 지도력'이다. ACL 준우승(최용수), 올림픽 동메달(홍명보)의 성과도 실질적인 지도력을 증명하는 지표가 됐다.

올해 J리그로 '컴백'한 윤 감독의 공도 컸다. J2에서 승격한 세레소 오사카는 올 시즌 전까지만 해도 중하위권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윤 감독은 올 시즌 두 차례 11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썼고 한때 J1 선두까지 올랐다. 13일 현재도 J1 18팀 중 4위를 달리며 ACL 진출을 노리고 있다. 특유의 근성 넘치는 조련을 통해 팀 전력을 일신했다. 지난해 J2에서 가능성을 증명했던 1m87의 공격수 스기모토 겐유를 타깃맨으로 완벽하게 조련해 J1 개인득점 공동 선두에 올려놓는 수완도 발휘했다.

한꺼풀을 벗겨보면 일본 축구 내부의 고민도 엿보인다. 2008년 감바 오사카를 이끌고 ACL에서 우승했던 니시노 아키라 감독(현 일본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이후 두각을 드러내는 국내파 지도자가 없다. '아시아 최고'를 자부하는 지도자 육성 시스템은 여전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피말리는 경쟁에 익숙하고 단기간에 팀을 조련해 성적을 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한국인 지도자들을 향한 '러브콜'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날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의 한국인 지도자 싹쓸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이제 한국 축구는 일본과도 '지도자 모시기' 경쟁을 해야 할 판이다.

스포츠2팀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