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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 기자의 제철미식기행=홍어

<김형우 기자의 제철미식기행=홍어>

8월의 끝자락, 제법 간절기의 느낌이 드는 때다. 가을에 접어드는 이즈음부터는 별밋거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차례다. 전어, 꽃게, 대하, 송이…

그중 여름을 나고 가을을 맞으며 또한 즐겨먹는 생선이 있다. 홍어가 그것이다.

가오리 사촌격인 홍어는 분류상 가오리목으로, 우리 발효음식의 대명사격으로 통하는 별미다. 특유의 쿰쿰하고도 톡 쏘는 미각이 중독성을 지녀 그 맛을 다시 찾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요즘에야 홍어가 연중 즐겨먹는 별미가 되었지만 사실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 무렵부터가 제 맛을 낸다. 홍어가 늦가을부터 초봄 사이 산란을 하는 관계로 살이 통통하게 오르기 시작하는 초가을부터 맛이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흔히들 홍어 하면 전남 신안, 흑산도 홍어를 얘기한다. 하지만 곰삭은 홍어의 원조 고장은 전남 나주의 영산포다. 신안 앞바다, 흑산도 해역은 예로부터 홍어의 주어장이었고 영산포가 집산지였던 것이다.

알싸한 홍어 맛의 내력은 영산포의 역사적 배경과 관계가 있다. 나주는 예로부터 곡창인 나주평야와 해산물 집산지인 영산포를 아우르는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특히 영산포는 조선시대 큰 포구로, 황해에서 영산강을 따라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뱃길의 끝이었다. 더불어 영산강 주변 평야에서 세금으로 거둔 쌀을 모으는 조창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영산포에 쌀이 모였고, 그 쌀은 또 이 뱃길을 따라 목포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영산포는 어항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영산강에 하구언이 생기고 물길이 막혀 쇠락하고 말았다. 금강 하구언의 등장으로 강경포구가 쇠퇴한 것과 비슷한 사연이다.

조선시대 흑산도 등 신안 앞바다에서 잡힌 생선은 뱃길을 따라 영산포까지 올라와 팔렸는데, 홍어 역시 돛단배에 싣고 달포쯤 걸려 영산포 까지 오는 동안 알싸하게 발효가 되었다. 그런 연유로 영산포 일대에 홍어 요리가 발달하게 되었다.

홍어는 우리 조상들도 즐겨 먹었던 별미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홍어의 쓰임이 잘 적혀 있다.

'홍어는 회, 구이, 국, 포에 모두 적합하다.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썩힌 홍어를 즐겨 먹었는데, 국을 끓여 먹으면 뱃병에도 좋고, 주기(酒氣)를 없애 주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정약전의 소개처럼 실제로 홍어탕은 술독을 풀어주는 해장국으로 최고다. 한 그릇 비우고 나면 간밤의 고약한 숙취가 슬슬 풀려 감을 실감할 수 있다.

현재 영산포 선창가 일대에는 홍어거리가 형성이 되어있어 홍어 전문점들이 성업 중이다. 이들 맛집을 찾으면 삼합(홍어회, 묵은 김치, 돼지고기 수육), 회, 탕(애국), 전, 찜, 무침 등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아예 홍어정식이라는 메뉴로 선보이고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결혼식 등 애경사에 홍어가 없으면 잔치로 치지 않을 만큼 애용되고 있다. 이제는 외지 사람들도 그 맛에 푹 빠져들었다. 외국인도 마니아가 생겨나다보니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는 잘 삭힌 홍어 스테이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홍어의 매력은 발효음식 특유의 중독성에 있다. 삭힌 홍어 특유의 독특한 냄새 탓에 홍어를 즐겨 먹게 된다. 동물은 그 몸의 노폐물인 요소를 소변으로 내보내게 되는데, 홍어는 그 요소를 피부로 내보낸다. 그 피부의 요소가 암모니아발효를 하여 내뿜는 게 홍어 냄새다. 특히 암모니아발효를 하게 되면 잡균을 죽이게 되는데, 그래서 홍어는 상온에서도 오랫동안 보관할 수가 있고 이 상태로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

경상도에도 홍어와 비슷한 경우의 음식이 있다. 돔배기가 그것이다. 상어고기인 돔배기는 포항, 영덕, 안동, 영주 등 내륙지방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제수다. 우리 동남해안의 바다에 상어가 많이 잡혔고, 그 상어를 내륙으로 가져오는 동안 자연 발효가 되었다. 상어도 피부로 요소를 배출하고 자연 상태로 두면 암모니아발효가 일어난다. 그 톡 쏘는 듯 한 특유의 냄새가 홍어나 돔배기나 같다고 해서 '홍어나 돔배기나' 라는 말도 생겨났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