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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모자'와 '송혜교 귀걸이',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스포츠조선 전혜진 기자] '수지 모자'와 '송혜교 귀걸이'라는 표현, 다들 한 번쯤은 써 봤을 것이다. 스타란 대중이 꿈꾸는 모습을 갖춘 이들이고, 입는 옷 액세서리 심지어 화장법마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자연스레 스타와 패션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그러나 흔히 일컬어지는 '수지 모자'와 '송혜교 귀걸이'가 이들의 착용 사진과 함께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홍보에 이용된다면 어떨까. 배우와 브랜드의 모호한 관계. 과연 어떤 기준으로 체계를 세워야 할까. 엔터스타일계의 뜨거운 감자, '퍼블리시티권'의 A to Z를 알아보자.

▶패션·엔터계 화두로 떠오른 '퍼블리시티권'

퍼블리시티권은 운동선수나 배우, 가수 등 유명인의 이름이나 초상, 기타의 동일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말한다. 이는 흔하게들 알고 있는 초상권과는 다른 성격을 띠는데, 초상권은 누군가가 내 얼굴을 함부로 촬영해 쓸 수 있게 하도록 주는 권리이고, 퍼블리시티권은 더욱 상업적으로 접근, 이름과 초상뿐 아니라 그 유명인의 이미지로 경제적 이익을 낼 것을 허락하는 권리를 말한다. 즉 초상권이 가진 인격적 보호의 성격에 재산의 가치를 더한 것.

이러한 퍼블리시티권의 성격상 주로 패션계에서 언급 되는 이슈다. 제품력이나 시장력보단 스타를 활용한 마케팅이 산업을 크게 좌지우지하는 국내 상황 속에서 요즘 특히 대두되고 있고 온라인을 통한 판매나 홍보의 중요성이 커진 시대 변화상 퍼블리시티권은 더더욱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모호한 지점들이 많아 법정 분쟁으로 확대된 사례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 민법상에는 정확하게 명시된 법률이 없어 더욱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정준하부터 수지까지…침해 유형, 사례는?

국내 퍼블리시티권 논쟁의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개그맨 정준하는 "나를 두 번 죽이는 거예요"라는 유행어로 인기를 얻었고, 한 모바일 콘텐츠 제공업체 K사는 정준하와 닮은 캐릭터를 무단으로 사용, 고객에게 유료로 판매했다. 정준하는 이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걸었고, 법원은 "초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등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며 "피고는 원고에게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에는 퍼블리시티권 관련 규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 대중의 인식 또한 매우 낮았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대부분 국가가 인정하고 있는 점, 이런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민법상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점,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권리 보호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는 점"을 들어 정준하의 손을 들어줬다. 스타에게 초상권을 넘어 캐릭터와 유행어의 권리까지 인정하게 된 최초의 판결이다.

지난 2013년엔 배용준, 소녀시대, 김수현, 장동건, 송혜교 등 59명의 스타가 포털 사이트와 온라인 쇼핑몰을 상대로 퍼블리시티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쇼핑몰이 연예인들의 이름을 제품 홍보에 활용하고, 포털 사이트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이유. 그러나 법원은 현재 국내 관련 법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렸고, 일부 연예인들은 소송을 포기하거나 항소심을 제기했으나 역시 패소했다.

또 가수 제시카와 배우 수애가 치아교정 관련 사진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해당 치과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가 퍼블리시티권은 인정하지 않고 초상권 침해 부분만을 인정해 위자료 청구를 판결한 사례가 있다. 민효린 역시 한 성형외과가 '버선코 민효린 코 만들기'라는 문구로 병원 홍보를 한 것이 대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성명권과 초상권 침해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인정한 후, 이에 대한 위자료 차원으로 300만 원을 주라는 판결을 했을 뿐 재산상의 손해는 아니라는 이유로 퍼플리시티권은 일부 인정했을 뿐이다. 이처럼 사례들은 제각각이다.

큰 이슈가 된 것은 수지와 관련된 두 건의 퍼블리시티권 소송. 한 쇼핑몰이 인터넷에 수지 모자를 검색하면 자동으로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연결하도록 만들었고, 수지 사진 역시 게재했다. 그러나 법원은 '성명권'과 '초상권'으로 이름과 얼굴 이미지를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했으나, 별도의 퍼블리시티권은 필요하지 않다는 판결을 한 것. JYP 측은 손해 배상 소송으로 모자광고 때문에 받을 돈을 받지 못했다라는 금전적 피해보상을 요구했지만, 법원은 이런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얼마나 봤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판사는 "초상권, 성명권이 침해됐다는 사정만으로 원고가 다른 사람과 초상, 성명 사용계약을 체결하지 못했거나 기존에 체결된 계약이 해지됐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려, 5,000만 원의 소송을 걸었던 수지가 받은 금액은 일부인 1,000만 원이다.

또 최근 수지는 태국의 한 성형 에이전시 페이지에 모델로 등장해 퍼블리시티권을 침해당했다. 이와 관련해 수지의 소속사 JYP 측 관계자는 "수지가 성형 에이젼시와 계약을 맺은 부분은 없다"고 확인하면서 "상황을 더 파악해보고, 대응방안 역시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으나 아직 그 대응은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진행 중. 배우 송혜교 역시 드라마 PPL 관련 퍼블리시티권 관련해 여전히 해결이 나지 않고 있어 답답함을 자아낸다. 송혜교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광고모델계약을 맺은 주얼리 브랜드 J사가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자신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무단으로 제품 홍보에 활용한 것에 대해 3억 원 규모의 초상권 침해 소송을 걸었다. 이에 대해 제이에스티나 측은 "드라마 장면을 온,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용하는 것은 PPL 계약조항 상 가능한 일이다. 송혜교의 세금 탈루 건으로 오히려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양측은 끊임없는 논쟁을 벌인 바 있다.

▶관련 법률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 없다" 모호

법적으로 명문 규정이 없는 이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판결은 제각각. 민법상 규정은 없지만 재판부에서 일부만 인정해 준 것도 있고 인정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2015년 이후부터는 퍼블리시티권을 부정하는 하급심 판결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퍼블리시티권 입법화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민법의 경우, 물권법정주의 즉 법률이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물권을 창설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상태다. 그렇기에 단순히 필요하다는 이유로 물권과 비슷한 퍼블리시티권을 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고, 그 판례와 근거가 확실히 마련되어야만 인정할 수 있다.

▶대중 기여도 무시?vs 권리 보호해야

스타들과 관련된 퍼블리시티권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그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스타들의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지만, 법안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과 문화 주권자의 이익만을 위해 과하게 주장한다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

여론은 한류 콘텐츠가 해외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산업 발전을 위해 반드시 인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한류 콘텐츠가 해외로 진출하는 상황, 이미 퍼블리시티권을 인정받고 있는 미국 등 해외에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될 우려와 아무리 공공의 기여가 큰 스타지만, 그들에게 원할 때 자신의 얼굴이 보이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렇게 되면 계약대로 이행하고 있는 광고계 등 이를 기초로 한 산업이 있을 수 없다. 권리가 아니라면 누구나 돈을 낼 이유도 없으며, 그냥 써도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퍼블리시티의 원래 뜻은 유료 광고와는 달리 "대중 매체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판촉활동"이다. 연예인은 어떤 수단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사람이고, 그 인기에 대중이 시간을 투자하고 여론을 형성한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그렇기에 이익의 기여도를 따지는 데 그 공을 나누기가 추상적이고 복잡하다는 것. 또한 초상권이나 성명권이 이미 있음에도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된다면, 주권자의 이득이 독점되고, 오히려 현실에 맞지 않아 업계 발전에 피해라는 소리다.

또한 악용될 경우, 사진이나 성명삭제 요청도 없이 침해의 이익이 크지 않은 시장 상인과 영세 업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소송 위협에 시달릴 위험이 있다.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법적 규제도 없을뿐더러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에 관한 인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제대로 된 '이익침해'에 대한 기준과 규정, 법적인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 온라인 편집샵 관계자는 "퍼블리시티권은 분명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아직 인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았다. 어떤 브랜드 숍은 사진을 그대로 쓰기도 하고, 대기업과 얽힌 브랜드는 법무팀 자체에서 제재를 가하기에 사용하지 않는 곳도 있다. 천차만별"이라며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더욱 뜨겁게 이슈화될 논쟁거리인 것은 확실하다"고 전했다.

▶'퍼블리시티권'은 산업의 문제, 모두가 '윈-윈'할 해결 방안은?

국내에는 퍼블리시티권 법제화를 위한 많은 움직임이 있지만, 실제 효력이 있는 법적 제도로 정착하기에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보다 앞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전한 미국 등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업 전체가 퍼블리시티권을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활동의 원천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수익구조로 기능한다.

법제 마련이 지연된다면, 해결책은 정당한 이익분배의 선순환 구조 마련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즉 현 국내 상황과 시장 규모에 맞게 스타와 패션 브랜드, 모두가 손해를 보지 않는 투명하고 정당하게 분배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 한 브랜드 관계자는 "해당자에게 모두 수익이 돌아가는 정확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산업 규모도 커지고 분쟁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납득할 만한 구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gina1004@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