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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초점] 나영석PD, JTBC, YG, 그리고 MBC의 외양간

[스포츠조선 박현택 기자] MBC 예능국은 빛을 잃었다.

22일, 크게 회자되어야 할 소식 한가지가 조용히 지나갔다. MBC 예능 PD 일동이 낸 성명서이다. 사장의 검열과 간섭, 제작비 삭감과 '줄세우기' 등에 대한 구구절절한 한탄에는 47명 예능 PD들의 실명이 함께 적혔다.

이제 MBC 예능 PD들은, 'MBC에서 웃기고 싶지' 않다. 다른 곳에 가서 웃기고 싶다. 조건과 상황만 맞으면 누구나 '나갈' 태세. MBC가 낳고 키운, 찬란한 PD들은 이미 수없이 타 방송사나 기획사로 둥지를 옮겼다.

국민예능과 국민 토크쇼를 보유한 MBC는 이제 '일하고 싶지 않은 회사'가 됐다. 심각한 수준인 인재 누수현상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나영석 PD는 신바람이 났다. 마치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자신있게 '이 옷, 저 옷' 마구 입어보는데, 죄다 잘 어울려서 이제는 청바지에 흰티를 던져줘도 빛이 날 것만 같다. 그와 후배 PD들이 모인 회의실은 얼마나 유쾌하고 치열할까. '이거 어때'라며 누군가 뱉은 아이디어 하나에 알찬 살이 붙어 '전에 없던' 예능으로 쾌속 공개된다. tvN 은 PD들을 대접하고 있다.

Mnet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방송국이지만, 가장 화려하다. '프로듀스101'은 다시 한번 '대박'을 이끌어냈고, 그 화제성은 시청률을 상회한다. 곧 다가올 '쇼미더머니' 역시 단순 '수치'보다 방송계, 가요계에 끼치는 영향력에서 펀치력을 보여줄 전망이다.

JTBC 예능국은 잘 깎인 연필들이 담긴 필통과 같다. 알차고 내실이 있다. '비정상회담'이 있고, '냉장고를 부탁해', '님과함께2' 가 있다. '팬텀싱어'는 야심차게 시즌2를 준비중이며, '뭉쳐야뜬다'와 '한끼줍쇼'의 시청률은 놀랍다.

간판 '아는형님'은 내심 10%를 노리고 있는데, 배우·가수할 것 없이 '먼저 찾는' 예능이 됐다. 이효리는 복귀 (고정) 예능으로 수많은 기획안 중 '효리네 민박'을 택했다. 더이상 지상파가 부럽지 않은 예능국.

SBS 예능국은 '미우새'가 보여준 가능성에 반색하며 '대반격'의 돛을 올렸다. '미우새'의 시청률, 20%는 '사건'이다. 대한민국 최고 시청률 예능임은 물론 방송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수치, 2049 시청률에서도 올해 방송된 모든 프로그램 중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1위는 지난 1월 21일 방송된 tvN '도깨비' 15회가 기록한 14.7% (평균 18.7%)였다. 3위는 지난 2월 26일 방송된 KBS 2TV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의 최종회(54회)의 13.9% (평균 35.8%) 이었다.

확실한 '리더'을 앞에 세우고 절치부심하고 있는 SBS PD들, 2~3%대 성적표를 받아들고 낙담하던 SBS 예능PD들은 희망을 봤다. SBS는 굵직한 예능 PD들의 이직, 이탈이 가장 적은 방송국이다.

이제 MBC의 '높은 분'들은 스스로를 서서히 마비시키고 있다. 타 방송국 예능국에 비해 유독 풀이 죽어 보이는데, 문제는 기획사들도 예능을 만들겠다며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YG는 재능있는 PD들을 수집했다. '더 모셔올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주에는 500평 규모의 최첨단 사무실을 오픈했다. 양현석 대표가 직접 모든 인테리어 가담했으며, 국내 최고의 제작 환경 설치했다고 한다. 영상 편집실만 40개, 프로그램 대회의실도 15개다. 말그대로 '원 없이 지원할테니 마음껏 놀아보라'는 자세다. YG뿐만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 외에도 재능있는 예능 PD들을 원한다.

멋드러진 사옥을 가진 MBC는 '사면초가'다. 아무도 웃기고 싶지 않은 멍석. 과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 있을까.

이하 MBC 예능국 PD 성명서

<성명서 전문>

이제 그만 웃기고 회사를 떠나라

웃기기 힘들다. 사람들 웃기는 방송 만들려고 예능PD가 되었는데 그거 만들라고 뽑아놓은 회사가 정작 웃기는 짓은 다 한다.

검열하는 거 진짜 웃긴다. 아무리 실력 있는 출연자도 사장이 싫어하면 못 쓴다. 노래 한 곡, 자막 한 줄 까지 간섭하는 거 보면 지지리도 할 일이 없는 게 분명하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아무리 시청률을 잘 뽑아도 멀쩡히 하던 프로그램 뺏긴다. 생각하지 말고, 알아서 검열하고, PD가 아니라 노예가 되라 한다.

돈 아끼는 거 진짜 웃긴다. KBS, SBS는커녕 케이블 종편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제작비를 깎는다. 출연자 섭외할 때마다 출연료 얘기하기가 부끄럽다. 늘 광고가 완판 되는 프로그램은 짐 싣는 승합차 한 대 더 썼다고 치도곤을 당했는데, "사장님 귀빈" 모시는 행사에는 몇 억 씩 쏟아 붓는다.

신입 못 받게 하는 거 진짜 웃긴다. 신입 공채는 막고 경력 공채는 기습적으로 열린다. 행여 끈끈해질까봐, 함께 손잡고 맞서 일어나 싸울까봐 경력직 PD들은 노동조합 가입도 못 하게 방해하며 누가 후배인지 언제부터 어떻게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얼굴들을 끝없이 늘려간다.

우리 꼬라지 웃겨 죽는다. 좋은 예능 만들겠다며 젊음을 쏟아 달려왔는데 어느새 보람도 보상도 없는 곳에 서있다. 회사는 시사교양국 없애고, 기자고 아나운서고 쫓아내고, 뉴스로 개그 하느라 정신이 없다. 회의실 편집실 촬영장에서 숱한 밤을 샜는데 남은 것은 얘기하기도 쪽팔린 이름 "엠빙신" 뿐이다.

웃긴 것 투성인데 도저히 웃을 수가 없다. 함께 고민하던 동료들은 결국 'PD다운 일터'를 찾아 수없이 떠났다. 매일 예능 뺨치게 웃기는 뉴스만 만드는 회사는 떠나는 동료들 등 뒤에는 '돈 때문에 나간다'며 웃기지도 않는 딱지를 붙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웃음을 만들어야 한다.

웃기기 정말 힘들다. 웃기는 짓은 회사가 다 한다. 가장 웃기는 건 이 모든 일에 앞장섰던 김장겸이 아직도 사장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그만 웃기고 회사를 떠나라. 웃기는 건 우리 예능PD들의 몫이다.

2017년 6월 22일 예능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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