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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로 날아드는 흉기, 투수들 피할 길 없나

두산 베어스 신인 투수 김명신(24)이 타자가 친 강습 타구에 얼굴을 맞고 쓰러져 올시즌을 뛰지 못하게 된 가운데, 투수를 타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명신은 지난 25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김민성의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얼굴을 맞고 심한 골절상을 입었다. 안면부 좌측 광대 부위에 3군데가 골절돼 부기가 가라앉는대로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다행히 타구가 눈을 피해 시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김명신은 타구를 도저히 피할 수 없었을까. 당시 김명신은 공을 던진 뒤 김민성이 친 타구가 날아오자 왼손에 끼고 있던 글러브를 얼굴 근처로 갖다 댔다. 그러나 타구 속도가 워낙 빨라 피할 겨를이 없었고, 글러브로도 막지 못했다.

타구에 맞아 치명상을 입은 사례는 KBO리그에서 여러차례 있었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 김원형(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은 한화 이글스 장종훈의 타구에 얼굴을 맞아 코뼈가 부러지고 광대뼈 세 군데가 함돌되는 아찔한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지난해 8월 LG 트윈스 김광삼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군 경기서 타구에 머리를 맞아 골절과 미세 출혈로 인한 후유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투수 출신인 양상문 LG 트윈스 감독은 "선수 시절 타구에 발이나 다리는 많이 맞아봤는데, 얼굴을 맞은 적은 없다. 타구가 얼굴 쪽으로 날아오면 반사신경이 작용해 본능적으로 피하게 돼 있다. 그런데 타구가 빠르면 어쩔 도리가 없다"면서 "김명신도 글러브를 갖다 댔지만, 타구가 워낙 빨랐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투수를 타구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경기 전 타자들이 타격 훈련을 할 때 배팅볼 투수가 그물망을 앞에 세워두고 던지는 것처럼, 어떤 물리적인 도구를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메이저리그에서는 2014년 투수들도 헬멧을 써도 괜찮다는 규정이 마련됐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투수들이 이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LA 다저스 클레이튼 커쇼는 2015년 시범경기서 타구에 턱을 맞아 치아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헬멧을 쓰고 던질 수는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양 감독은 "헬멧 이야기도 나오는데 투수를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사실 없다. 다만 타구 속도는 생각볼 수 있다. 선수들이 쓰는 배트를 정기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야구규칙에 맞는 배트를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니스를 칠하는 등 반발력을 의도적으로 높이는 사례가 있다고 들었다. 배트에 문제가 있다면 확인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리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반발력을 줄인다고 해서 투수가 강하게 날아오는 직선 타구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했던 마이크 쿨바가 2007년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1루 코치로 나갔다가 타구에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주루코치들은 헬멧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아니기 때문에 헬멧 때문에 주루코치의 역할을 하는데 불편함이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또한 강습 타구가 오더라도 타석으로부터 거리가 있어 피할 수 있는 시간이 투수보다는 길다.

도대체 타구 속도가 얼마나 되길래 투수에게 '흉기'로 작용하는 것일까. 메이저리그 홈런 선두를 달리며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밀워키 브루어스 에릭 테임즈의 올시즌 홈런타구 속도는 평균 시속 101.77마일, 약 164㎞에 이른다. 투수가 던진 공이 배트를 맞고 나가는 순간의 속도를 측정한 것이다. 테임즈의 홈런타구 속도는 그래도 느린 편이다. 7홈런을 기록중인 마이애미 말린스 지안카를로 스탠튼의 홈런타구 평균 속도는 시속 111.66마일, 179.7㎞나 된다.

투수를 향하는 강습타구가 홈런타구보다 속도가 느리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속 160~170㎞짜리 타구가 얼굴을 향해 날아온다면 전광석화같은 몸놀림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해 9월 LA 에인절스 선발투수 맷 슈메이커는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카일 시거의 강습타구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적이 있는데, 당시 타구 속도는 105마일(약 169㎞)이었다고 한다.

시속 170㎞짜리 직선타구가 타자의 배트에서 투수까지 날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0.39초 밖에 안된다. 깜짝하는 사이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하기란 아무리 반사신경이 뛰어나도 쉽지 않다. 또한 연구에 따르면 무게 145g, 지름 7.48㎝인 야구공이 170㎞로 날아올 때 가하는 충격은 32㎏짜리 물체가 1m 높이에서 떨어질 때의 그것과 같다. 속도와 충격 모두 신체에 닿았을 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타구가 투수 자신을 향할 때는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하는 게 상책이다. 수비를 하려고 적극적으로 덤벼들 필요가 없다. 수비는 다른 야수들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다. 양 감독은 "공이 날아올 때 맨손으로 잡거나 발과 다리로 막으려는 투수들이 있다. 순간적으로 수비를 하려는 본능 때문인데 다칠 수 있다"면서 "강습타구도 마찬가지다. 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