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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행동한' 이상민, 신태용호의 진정한 MVP

"내가 아는 지식 안에서 행동했다."

신태용호 수비수 이상민(20·숭실대)의 손에는 여전히 상처가 남았다. 30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아디다스 20세 이하(U-20) 4개국 축구대회 우승 직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이상민은 동료 정태욱의 목숨을 살린 '20초 응급처치'에 대해 "누가 봐도 의식을 잃었을 상황이었다. 위험을 인지했다. 혀 말리는 게 제일 먼저 생각났고 무조건 대처해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27일 잠비아와의 2차전 후반 34분, 센터백 정태욱이 공중볼을 따내려다 잠비아의 케네스 칼룽가와 충돌했다. 그라운드로 떨어진 정태욱은 의식을 잃었다. '센터백 듀오' 20번 이상민은 사고 장면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왔다. 정태욱 옆에 무릎을 꿇은 채 김덕철 주심과 함께 기도를 확보하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골든타임'을 지켜낸 이 행동 덕분에 정태욱은 목숨을 구했다.

이상민은 "다들 걱정하고 있을 때 태욱이가 먼저 괜찮다고 연락을 해줬다. 너무 기뻤다"고 했다. "나는 처음 맞는 상황이었다. 내가 아는 지식안에서 행동했다"고 말했다. "딱히 교육 받은 것은 없지만, 그라운드에서 의식을 잃었을 때에 대한 것은 대표팀에서 그리고 닥터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었다. 고등학교 때 그런 사례에 대한 기사도 봤다"고 했다.

허 강 동의과학대 재활센터 재활팀장은 맨손 응급처치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 "무의식 상태에서 혀가 말리면 입을 다물고자 하는 힘은 엄청나다. 혀를 누르고 입을 열어 기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원래 매뉴얼은 수건으로 손을 감싸야 한다. 급할 때는 유니폼을 벗어서 손을 감쌀 수도 있다. 촌각을 다투다보니 유니폼을 벗을 틈도 없이 맨손으로 아픔을 참았을 것"이라고 했다. "심판 교육 때는 선심의 깃발을 기도 유지용 지렛대로 삼으라고 한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힘"이라고 재차 설명했다. 이상민은 "사실 손이 엄청 아팠다"며 웃었다. 수건도 없이 맨손으로 정태욱의 닫히는 입을 강제로 열어 기도를 유지했다. 센터백 파트너 정태욱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 뿐이었다.

응급처치뿐 아니라 원팀의 동료애도 뭉클했다. 잠비아전 4대1 대승 직후 이들은 그라운드에 모여 무릎을 꿇고 정태욱의 쾌유를 눈물로 기도했다. 정태욱은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았다. 목뼈에 실금이 갔고 전치 6주 진단을 받았지만, 그만하길 다행이었다. 끔찍한 부상 리플레이 장면에 비하면 '천우신조'였다.

에콰도르와의 3차전 0대2로 패했지만 '승자승'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30일, 우승세리머니에서 이상민과 U-20 대표팀은 '5번 정태욱'의 유니폼을 들어올렸다. 이상민은 "팀 동료이기 때문에 당연히…"라고 했다. "우리가 우승을 했고 태욱이가 그 우승에 공이 컸다. 태욱이를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생각에 한 세리머니"라고 설명했다. 아찔했던 정태욱의 부상은 신태용호를 더 끈끈한 '원팀'으로 묶는 계기가 됐다.

20세 이하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다. 우승도 빛났지만, 그보다 더 빛난 건 행동하는 스포츠맨십과 '원팀'의 동료애였다. 축구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응급처치,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알렸다. 프로 선배들도 해내기 힘든 기민한 응급처치로 동료의 생명을 구했다. 이상민의 빠른 판단과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한 축구팬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이상민의 기민한 대처는 흔히 생각하듯 철두철미한 교육이나 시스템 덕분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관심과 뜨거운 동료애에서 나온 일이다. 열악한 학원축구의 환경속에서 나온 자구책이기도 하다. 현장의 한 감독은 "학원축구에서는 팀닥터나 트레이너가 없기 때문에 돌발상황에서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이 혀를 빼내는 응급처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초중고 축구부는 물론 대부분의 대학팀에는 전문 트레이너가 없다. 큰 대회에선 지역 병원이나 재활센터에서 지원을 나오지만 평소 훈련 때나 연습경기, 소규모 대회에선 코칭스태프나 심판, 선수들이 해결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고 혀가 말리는 사고를 목격하면서, 어깨 너머로 응급조치를 배운다. 이번 이상민의 사례는 구급차, 전문 트레이너 등 현장 응급처치 시스템을 다시금 돌아보고 응급처치 교육을 강화하는 계기로도 삼아야 한다. 이상민의 응급처치 사례는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더욱 널리 알리고, 더욱 크게 칭찬할 필요가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상민에 대한 포상 이야기도 흘러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민은 "(정)태욱이와 19세 이하 대표팀부터 2년 넘게 같이 해왔다. 늘 함께해온 친구다. U-20 월드컵에서 꼭 함께 뛰고 싶다"며 웃었다. 이번 대회의 진정한 MVP는 '20번 이상민'이다. 제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