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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백신'으로 직접 예방 가능한 유일한 '암'?

한국에서는 '자궁경부암'으로 하루에 2~3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자궁경부암은 질에서 자궁으로 이어지는 경부에 발생하는 악성종양으로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암이다. '무증상이 증상'일 정도로 조기발견이 어렵다. 특별한 통증이나 이상이 없고 월경장애 등 평소에도 겪을 법한 증상에 그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악화된 뒤에야 발견되기 십상이다.

자궁경부암이 무서운 것은 '이미 발견됐을 때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 적잖아서다. 이처럼 위험한 질병이지만 '백신'으로 직접 예방이 가능한 유일한 '암'이다. 국가차원의 지원으로 무료 접종도 가능하다. 자궁경부암이 무엇인지, 예방 접종은 언제, 어떤 약으로 하는 것이 좋은지 살펴보자.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

교사 김모씨(42·여)는 '자궁경부암' 생존자다. 30살에 둘째를 임신했을 때 자궁경부암 진단을 동시에 받았다. 다행히 암이 위험한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7~10년 정도 걸리는 상태여서 무사히 출산했다. 그는 "자궁경부암을 진단받고 갑자기 여성으로서의 삶의 일부가 끝나는 것은 아닌가, 막막하고 두려웠다"며 "아무런 증상이 없었기에 청천벽력 같았고, 일찍 발견해 치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딸만 둘인 김씨는 아이들이 자신 같은 경험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첫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시켰다. 김씨는 "아이들은 암에 걸렸던 이야기를 해도 막상 크게 와 닿지 않고, 자궁경부암이 어떤 것인지, 자궁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지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며 "힘든 시간을 함께 해준 남편이 백신의 효과에 대해 아이에게 알려주고 지난해 무료접종을 받게 했다"고 말했다.

◇발암 주원인 'HPV 16·18형' 미리 차단이 상책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주원인은 성관계로 감염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다. 유전이 아닌 바이러스에 의한 것인 만큼 유일하게 백신으로 발병을 직접 예방할 수 있는 암이기도 하다. 조기치료에 나서거나, 백신으로 미리 원인을 차단한다면 미래의 위험을 덜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현재까지 150여종 이상의 HPV 중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고위험군 바이러스는 약 15종이며, 이 중 16형과 18형은 자궁경부암에서 약 70%가 발견되는 대표적인 발암 원인이라고 정의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자궁경부암은 원인이 되는 HPV를 차단하는 백신을 접종하고, 정기검진으로 예방하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주웅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자궁경부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90% 이상이지만, 다른 암종에 비해 효과적인 항암제가 적어 말기에 진단받으면 10%로 뚝 떨어진다"며 "국내에서만 연평균 3300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900여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지난해부터 만12세 또는 12세~13세 여성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백신 무료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20세부터는 격년으로 자궁경부암 검진을 지원한다.



◇저조한 백신접종률, '부작용 괴담'이 문제

지난해부터 자궁경부암 백신이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NIP)에 들어갔지만 대상자의 접종률은 49.9%로 집계됐다. NIP 시행 전에 비해 접종률이 10배 가량 높아진 것이나, 영국과 호주 등 선진국(80~90%)에는 미치지 못한다. 백신 접종 확대가 더딘 배경에는 '백신 괴담'이 있다. 온라인에서 "제약사의 로비로 안 맞아도 되는 백신을 맞는 것", "의사는 자신의 자녀에게 절대 백신을 맞히지 않는다" 등등의 괴담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괴담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지적한다. 또, 자궁경부암 생존 여성들도 "내 아이만은 자궁경부암에 걸리지 않게 접종으로 최대한 막아주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백신 논란은 2013년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10년간의 추적연구 결과 백신의 안전성 문제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세계보건기구(WHO)의 견해다.

전문가들은 자궁경부암 백신은 이미 세계적으로 2억명 이상에게 투여해 특별한 부작용 문제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윤주희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과학적 근거가 미약한 사회 일각의 '백신 부작용 괴담'으로 접종 시기를 놓치면 자궁경부암 예방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적의 접종시기는 '중학교 진학 전'

자궁경부암 백신은 어릴 때 접종할수록 유리하다. 미국 소아과학회(AAP)와 CDC 등은 11~12세 소녀에게 의무적으로 HPV 백신을 접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부인암학회는 관련 임상연구 분석결과 적정 연령에 백신을 접종하면 대상자의 90% 이상이 자궁경부암 예방효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12세 이전 연령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양과 횟수의 백신 접종만으로도 충분한 예방효과를 내는 항체가 유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백신 유리할까? '서바릭스'vs'가다실'

자궁경부암 백신은 글로벌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서바릭스'와 한국MSD의 '가다실' 등 2가지가 있다. 모두 고위험 바이러스인 HPV 16형과 18형을 차단한다. 가다실은 암 예방과 함께 곤지름(성기사마귀)의 주요 원인인 6형과 11형에 대한 항체도 생성할 수 있는 항원이 추가적으로 포함돼 있어 서바릭스보다 비싼 편이다. 무료접종을 받는 대상자는 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서바릭스는 16형과 18형 두 가지에 대한 백신이지만 암 예방 효과와 관련되는 항체 생성률이 가다실보다 높다. GSK는 임상시험을 통해 15~25세 여성 대상 3회 접종 시 HPV 16형과 18형에 의한 자궁경부암 전 단계에서 100%, HPV 종류에 상관없이 자궁경부암 전 단계의 인유두종바이러스감염질환(전암병변, CIN3)에 대해 약 93.2%의 예방효과를 입증했다.

전암병변이란 정상조직에서 암이 발생하기까지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중간단계를 말한다. 발암과정의 초기 단계인 셈이다.

유럽연합 질병통제예방센터(ECDC),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들도 서바릭스와 가다실의 임상연구를 비교 분석한 문헌고찰연구에서 서바릭스에 판정승을 내렸다. 자궁경부 상피 내종양에 있어서 서바릭스의 유효성(93%)이 가다실(43%)보다 더 높다는 판단이다.

김태준 호산여성병원 산부인과 원장은 "두 약 중 어느 것이 좋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며 "'서바릭스'는 자궁경부암에 대한 강력한 항체를 오랫동안 유지한다는 잠점이, '가다실'은 자궁경부암 외에 '곤지름'에 대한 예방도 가능하다는 각각의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차이는 두 백신의 항원보강제에서 비롯됐다. 접종 후 면역능력을 강화하고 지속성을 유지시켜주는 항원보강제로는 보통 알루미늄염이 활용돼 왔다.

서바릭스는 'AS04 시스템'이란 항원보강제를 채택했는데 기존 항원보강제에 비해 항체역가가 높아 HPV 16형과 18형을 강력하게 차단할 수 있다. 또, 지속력이 더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바릭스는 9~14세 여아를 대상으로 한 2회 접종(0, 6개월)에서 기존 백신을 3회 접종한 것과 비슷한 면역반응 및 안전성이 확인됐다.



◇곤지름 예방, 여성 단독 접종만으론 2% 모자라

가다실이 서바릭스와 차별화되는 게 '곤지름', 속칭 '성기사마귀'의 예방이다.

호주는 국가에서 남성에게도 HPV 백신 접종을 지원하고 있는 최초의 국가다. 2013년부터 학교 차원에서 접종을 의무화해 약 84%의 12~13세 남학생이 1차 접종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호주의 남성에 대한 접종효과를 연구한 결과 2007년 1.5%이던 생식기 사마귀 감염률은 2011년 0.85%로 낮아지기도 했다. 단, 성기사마귀의 경우 6형과 11형뿐만 아니라 다른 바이러스에 의해서도 유발될 수 있어 완전 예방에는 한계가 있다. 또, 남자와 여자 아이가 같이 맞아야 예방효과가 극대화된다.



◇2004년생 및 지난해 1차접종 한 경우 국가지원

올해 지원 대상은 2004년 1월 1일~2005년 12월 31일에 태어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생으로 전국적으로 약 43만8000명 수준이다. 2003년생 중 지난해 1차 접종을 받은 학생도 올해 2차 무료 접종이 지원된다. 2차 접종 무료지원기간은 1차 접종 후 24개월까지다. 2003년 출생한 여성 청소년 중 사업 시행 전에 자체적으로 1차 접종을 받은 경우도 내년 6월 30일까지 2차 접종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대상자는 보호자와 함께 주소지와 무관하게 전국 참여의료기관(산부인과 및 보건소)을 방문해 접종받으면 된다. 이후 6개월 뒤 2차 접종을 완료한다. 단, 예전에 백신 접종으로 심한 알레르기반응(아나필락시스)을 겪은 아이는 접종받으면 안 된다. 급성 중증 열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증상이 회복될 때까지 접종을 미루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