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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사심'이정협 대표팀 합류 늦춘 기특한 사연

원조 '슈틸리케의 황태자' 이정협(26·부산)은 A대표팀에 하루 늦게 합류했다. 20일 오후 허용준(전남)과 함께 중국 창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중국전을 치르기 위해 창사로 떠난 '슈틸리케호'의 소집 일정은 19일 오후 6시 인천공항. 유럽파를 제외한 선수들이 공항에서 집결한 뒤 8시20분 항공편을 이용했다.

이정협이 허용준과 마찬가지로 대표팀 소집을 하루 미룬 것은 19일 열린 K리그 챌린지 3라운드 출전 때문이었다. 이날 이정협의 출전 속에는 기특한 사연이 숨어 있었다.

부산 구단 관계자는 "이정협이 소속 팀을 그토록 배려해 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살짝 감동도 했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지난 13일 슈틸리케 감독이 A대표팀 소집 명단을 발표한 뒤 부산 구단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작년 11월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5차전을 앞두고 다시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던 이정협이 이번에도 발탁된 것은 경사였다.

부산이 챌린지 리그 소속이라 이정협의 대표팀 차출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날려버렸고,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한 팀의 자긍심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기쁨과 함께 걱정이 몰려왔다.

명단 발표 당시 부산은 개막전부터 2연승, 이정협은 2경기 연속골로 한창 발동이 걸린 상태였다. 하필 대표팀 소집일이 챌린지 3라운드가 예정된 19일이다. 더구나 그날은 부산축구 부흥을 위해 경남과의 '낙동강 더비'를 탄생시키는 자리였고 부산축구의 레전드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심판운영실장을 은퇴 후 최초로 구덕운동장에 초청하는 이벤트를 준비한 날이었다.

팀의 에이스 이정협이 빠질 수 없는 경기임에 틀림없지만 대표팀 소집을 생각하니 이정협을 억지로 붙잡아 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오후 3시 부산에서 경남전을 마친 뒤 황급히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는 방안도 생각했지만 물리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정협이 원칙 대로 대표팀 소집시간에 응하겠다고 하면 구단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래저래 이정협의 눈치만 보고 있을 즈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이정협이 벌써 대한축구협회에 연락을 취해 하루 늦게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는 것이다. 경남전의 중요성을 알고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대표팀에 차출되면 혹시 불의의 부상을 할까봐, 가급적 몸을 아끼기 위해 리그 경기 출전을 부담스러워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부산 구단도 이정협이 상무 시절 경기 중 안면골절상으로 크게 고생한 적이 있는 터라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정협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대표팀에서 다시 기회를 얻은 것은 부산 동료 선수들과 팀을 이뤄 뛰었기 때문이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리그 연속골도 동료들의 도움 덕분이다"며 "팀도 중요한 시기인데 대표팀 뽑혔다고 홀랑 가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함께 출전해서 작은 힘을 보태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정협의 이런 마음 씀씀이를 알게 된 구단 관계자들은 "이정협이 올해 독을 단단히 품은 것 같다. 정말 기특한 팀의 에이스"라고 감탄했다.

덧붙여 이정협은 "경남전 출전은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경기 감각을 유지하고, 상승세인 팀의 기분좋은 기운을 받아 대표팀에 갈 수 있다. 몸이 좀 피곤한 것은 중국전 이전에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음을 곱게 썼기 때문일까. 이정협은 경남전에서 패배 위기에서 구하는 동점골을 터뜨리며 프로 데뷔 처음으로 3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뒤늦게 중국으로 향한 이정협은 "이렇게 홀가분한 기분으로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활짝 웃었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