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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질주 '슈퍼특검 열차' 마침내 종착역…자정 수사종료

90일 동안 쉼 없이 달려온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8일 자정에 수사 활동을 종료하고 공소유지팀으로 축소 재편된다.
파견 검사 20명을 포함해 100명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로 꾸려진 이번 박영수 특검팀은 '슈퍼특검'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현직 대통령의 비위 의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의혹을 파헤치면서 양적, 질적 면에서 과거 어느 특검과 비견할 수 없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삼성 등 대기업의 뇌물 의혹 수사에 역량을 쏟아부은 나머지 이번 수사의 최대 하이라이트가 될 것으로 여겨진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를 결국 달성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 박영수의 '뚝심'…뇌물죄 기소 결국 관철
특검팀은 작년 12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이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전 서울고검장을 '최순실 특별검사'에 임명하고 나서 90일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12월 21일 현판식을 시작으로 한 공식 수사 기간으로 따지면 이날까지 주말과 연휴를 반납한 채 70일의 강행군이 이어졌다.
법조계에서는 무엇보다 박영수 특검팀이 앞선 검찰 수사의 '직권남용·강요' 프레임을 '뇌물' 법리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검찰은 앞서 최씨와 박 대통령이 공모해 53여개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3억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만 해도 검찰이 재단 출연금에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를 적용하고, 박 대통령까지 공범으로 지목해 형사 입건한 것 자체가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박 특검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수사 초기부터 뇌물죄 적용 가능성에 주목하고 강한 수사 의지를 천명했다.
박 특검은 취임 직후 "재단 기금 (모금의) 본질을 직권남용 등으로 보는 것은 구멍이 많은 것 같다. 다른 쪽으로 우회하는 것보다는 때론 직접 (본질로 치고) 들어가는 게 좋을 수 있다"며 수사 방향을 시사했다.
특검팀은 이후 미르·K재단 외에도 최씨 일가에 거액을 지원한 의혹이 제기된 삼성그룹을 주요 목표로 삼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결국 삼성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강수를 뒀다.
영장이 기각되면서 '무리한 수사' 논란이 이는 등 역풍을 맞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특검팀은 보강 수사 끝에 2차 구속영장을 청구해 결국 이 부회장을 구속하면서 '뇌물 프레임' 관철에 성공했다.
다만 1차 영장 기각으로 수사 일정이 지연되면서 박 대통령 대면조사 본격 추진도 늦어졌고 시간에 쫓긴 가운데 이뤄진 불리한 협상 과정에서 결국 대면조사가 무산돼 '템포 조절'에는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또 실질적으로 뇌물 수수 혐의자인 최씨와 박 대통령을 향한 수사가 진행된 셈이지만 외견상 삼성 등 대기업에 수사력이 집중되는 모양새가 연출돼 재계를 중심으로 '삼성 특검', '대기업 특검'이라는 불만이 쏟아진 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 김기춘·조윤선 '거물급' 구속·기소자만 31명…우병우 '불발'
특검팀은 최씨의 국정 농단 의혹을 중심으로 파생된 ▲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 ▲ 삼성 등 대기업 뇌물 ▲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찬성 ▲ 정유라(21)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및 학사 특혜 ▲ '비선 진료' 등 의료 비리 의혹 등 주요 수사 줄기마다 모두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특검팀은 박근혜 정부의 최대 실세로 군림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 거물급·중량급 전·현직 공직자를 대거 구속했다.
특검팀이 수사 마지막 날인 28일까지 구속·불구속 기소한 이들은 총 30명에 달한다. 이는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출범한 12차례 특검 중 최대 규모다.
국민의 관심이 쏠린 '세월호 7시간' 핵심 의혹 규명에는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다만 공식 절차를 밟지 않은 '비선 진료' 의사들이 박 대통령에게 미용 시술을 한 사실을 밝히는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대통령의 건강 관리 체계가 난맥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여타 의혹과 달리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수사에는 다소 미온적이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다.
특검팀의 핵심 전력인 파견 검사들이 친정인 검찰과 법무부를 겨냥할 수 있는 수사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 특검 수뇌부와 파견 검사들 사이에 방향을 놓고 진통을 겪는 과정에서 동력이 약화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법조계에서는 일부 아쉬운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70일로 한정된 공식 수사 기간 특검팀이 현직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상당한 의혹 규명 성과를 냈다는 평가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특검이 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유례 없는 수사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70일의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보인다"며 "어려운 여건을 고려할 때 상당한 수사 결과를 내놓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cha@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