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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 기자의 제철 미식기행=대구(大口)

겨울철 빼놓을 수없는 미식거리가 있다. 대구다. 큼지막한 대구를 토막 내고 무와 대파를 넣고 끓여낸 말금-칼칼한 대구탕의 시원한 국물 맛은 그 어떤 생선국과도 비교할 수 없다.

유독 겨울 대구가 맛난 것은 최고의 성어기에 암놈은 알배기, 수놈은 고소한 곤이가 듬뿍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대구 경매가 끝난 포구 식당에서 갓잡은 싱싱한 대구로 끓여낸 탕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뜨거운 아이스크림이 있다면 그런 부드러움일까 싶을 만큼 하얀 대구 살과 곤이의 부드러움은 감탄을 절로 나게 한다.

겨울철 최고의 별미인 대구는 입과 머리가 크다 해서 '大口'라 불리는 한류성 어종이다. 명태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몸 앞쪽이 더 두툼하고 아래턱 중앙에 감각기관인 한 개의 수염이 있는 게 다른 모습이다. 특히 몸집은 60~90㎝, 큰 놈은 1m길이로도 자라, 무게가 7~10kg을 훌쩍 넘어서기도 한다.

대구는 우리나라 동해안 전역에서 잡히고 있지만 특히 겨울철 경남 거제 앞바다에 주요 어장이 형성된다. 이는 최근 삼십 여 년 전부터 벌인 대구 치어 방류사업이 결실을 거둔 경우로, 경남 거제 외포 등 진해만에서 방류된 치어가 베링해를 돌아 한겨울 고향에 산란을 위해 찾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근 외포가 대구 풍어의 명소가 되기까지는 곡절도 있었다.

진해만-가덕만 대구는 본래 고려시대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등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어획고가 크게 줄며 서민들이 맛보기 힘든 귀족 어류가 되었다. 1990년대에는 60~70cm짜리 대구 한 마리 가격이 20~30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에 어민들은 지난 1986년부터 인공수정란 방류 사업과 산란기인 1월 한 달간의 금어기를 지키는 등 일련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그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해만 등 우리 동남 연안에 대구가 본격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구 어획량도 1990년 487톤이었던 것이 2000년 1766톤, 2014년에는 9940톤으로 크게 늘었다.

겨울철 외포앞바다에는 대구가 회귀하는 길목에 쳐둔 그물을 걷기 위해 칼바람 속에서도 조업이 한창이다. 밤새 외포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대구는 이튿날 새벽 어판장으로 향한다.

동틀 무렵 치러지는 경매 모습도 볼거리이다. 아침 7시, 경매가 시작되는 거제 외포 어판장은 싱싱한 대구를 구하려는 상인들의 발길로 성시를 이룬다. 알아들을 듯 말듯 쉼 없이 중얼거리는 경매사의 쉰 목소리와 경매인들의 수신호가 두어 시간 넘게 지속되고, 참치 몸통만한 싱싱한 대물들은 미식가들의 식탁을 향해 부지런히 포구를 떠난다.

올겨울 외포항의 대구 작황은 평년작 수준이다. 외포수협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2월까지 하루 3000여 마리, 1월 들어서는 2000마리 정도의 싱싱한 겨울 대구가 경매에 붙여지고 있는 중이다. 겨울 대구는 수놈이 더 비싸다. 부드러운 곤이가 듬뿍 들어 있기 때문이다. 3짜리 수컷이 4~5만 원, 암컷은 3~4만 원의 경매 가를 유지하고 있다.

대구는 다양한 요리로 식탁에 오른다. 생물 대구는 말간 지리 탕을 해먹고, 냉동대구는 주로 매운탕으로 조리한다. 대구 찜도 맛나다. 생대 구를 콩나물, 미더덕, 미나리, 대파, 마늘다짐 등을 듬뿍 넣고 매콤하게 쪄놓으면 밥반찬,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대구 아가미요리(구시매)도 맛있다. 주로 무채 김치를 담가 먹거나 젓갈로 먹는데, '구시매 김치'로도 부르는 대구 아가미김치는 특유의 시원한 풍미가 살아 있는 별미 중의 별미다.

서양 사람들도 대구를 즐겨 먹는다. 영국의 유명한 생선 튀김 '피시 앤 칩서'도 대구 살을 많이 쓴다.

이른 아침 거제 외포 식당가를 찾으면 냉면 대접보다 더 큰 국그릇에 대구탕을 가득 담아낸다. 평소 같으면 대단히 부담스러운 양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것을 아침식사로 뚝딱 비워낸다. 이게 산지 미식기행의 묘미다. 갓 끓여낸 대구탕에는 식당 아지매의 손맛에 겨울 바다의 느낌까지 가득 담겨있기 때문이다.

겨울 거제도는 선홍빛 동백과 일몰-일출이 아름답다. 특히 거제도 남단의 '여차-홍포 해안도로'는 바다를 감상하며 드라이브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침저녁으로는 장엄한 일출과 환상적인 일몰의 풍경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어 들를만하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