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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커' 이상혁,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은 국내를 넘어 세계를 제패했다. 프로 스포츠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잣대인 연봉도 30억원(추정)을 찍었다. 국내 다른 인기 프로 스포츠에서도 보기힘든 액수. 하지만 그는 여전히 최고가 아니라고 몸을 낮춘다. 이뤄야 할 목표는 아직도 차고 넘친다는 이유다. 전세계 최고의 e스포츠 스타로 꼽히는 SK텔레콤 T1 '리그 오브 레전드'팀의 미드 라이너 이상혁(21) 얘기다.

게임 아이디인 '페이커'(faker)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상혁은 지난 2012년 고등학교 1학년 때 팀에 합류, 2013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이후 그해 국내리그인 'LoL 챔피언스' 서머 시즌을 제패한데 이어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까지 거머쥐며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스타크래프트'와 달리 'LoL'은 5대5의 단체전이라 한 명의 선수만 부각되기는 힘든데, 독보적인 실력과 스타성으로 인해 이상혁은 지난해까지 4년간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는 17일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스프링 시즌을 시작으로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만난 이상혁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

이상혁은 지난 2013년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5년째 SKT T1의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다른 주전 선수들은 매년 변화가 있었다. 지난 2015년 롤드컵을 제패한 SKT는 탑 라이너 장경환 대신 이호성이 합류했고, 지난해 롤드컵을 2연패 한 이후 이호성과 배성웅이 팀을 떠나고 대신 허승훈과 한왕호가 각각 탑과 정글 포지션을 맡게 됐다. 거의 매년 팀 주전 1~2명씩 바뀌었지만 SKT는 여전히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이상혁이 팀의 중심을 잡아준 덕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해외에서 뛰던 유명 선수들이 대거 국내로 복귀, 롤챔스 스프링부터 혈전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SKT의 라이벌이지만 LoL e스포츠에선 열세를 면치 못하던 kt롤스터가 송경호 허원석 김혁규 조세형 등을 영입, 호화 라인업을 구축하면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이상혁은 "3개팀 정도가 독주하던 지난 2년과는 달리, 롤챔스 초창기 때처럼 어느 팀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한 시즌이 될 것 같다"면서도 "물론 쉽지 않겠지만 우리팀 전력은 지난해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기에 당연히 목표는 우승이다. 그리고 롤드컵에 나가 사상 최초의 3연패를 이루는 것도 우리팀의 몫"이라고 말했다.

▶한층 커진 책임감

SKT T1에 남아 있는 유일한 창단 멤버이기는 하지만 이상혁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약관의 청년일 뿐이다. 걸그룹을 좋아하고 외모에 대한 관심도 한층 많을 나이, 하지만 이상혁의 일상은 게임으로 시작해 게임으로 끝난다. 낮 12시부터 시작되는 팀 훈련은 중간에 3시간의 식사와 휴식, 체력 훈련을 포함해 오후 11시까지 이어진다. 이후에는 개인 훈련 시간인데, 이상혁의 하루는 보통 새벽 4시가 돼야 끝난다. 이상혁은 "게임에 대한 생각이 80%쯤 되는 것 같다. 10%쯤은 졸리다는 느낌, 나머지는 건강이나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청춘의 궤적을 목표 달성을 위해 지극히 단순화 시킨 상황.

SKT 최병훈 감독은 "대부분 상혁이가 연습실 전등을 끄고 나간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여전히 게임에 파고드는 모습은 무서울 정도로 진지하다"며 "상징성이나 성적뿐 아니라 성실함 때문이라도 팀에서 충분히 최고 대우를 받을만하다"고 말했다. 물론 몸값의 상승만큼 기대감도 커졌다. 이상혁은 "처음엔 어린 나이에 많은 돈을 받는 것이 무작정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책임감이 클 수 밖에 없다"며 "아직 연봉이나 팬들이 보내주신 사랑에 걸맞는 수준의 실력은 아니기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는 여전히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한 것 같다. 이를 개선시켜 나가야 하는 것도 내가 해야할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한 중국, 북미팀의 제의를 뿌리치고 이상혁이 국내 잔류를 선택한데는 이런 이유도 포함돼 있다.

▶준비된 사람만 도전하라

어린 나이에 돈과 명예를 한번에 쥔 청년, 그러나 이상혁은 사실 프로게이머가 인생의 첫번째 목표는 아니었다. 아이러니한 얘기지만 사실이다.

이상혁은 "LoL 서비스 초창기에는 e스포츠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했다. 그래도 솔로랭킹전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면서 나름 재능과 준비가 된 것 같아 프로게이머의 길로 뛰어들었다"며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무작정 프로게이머를 동경한다면 대부분 실패한다. 그래서 결코 추천하지는 않는 직업"이라며 웃었다.

그래도 이제 e스포츠는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콘텐츠가 됐다. 국내 e스포츠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6600여만원에 이르고, 롤드컵 우승상금은 무려 24억원이다. 롤드컵 결승전은 4400만명이 지켜본다. e스포츠가 시공간을 뛰어넘는 동시에 젊은 세대에 친숙한 인터넷, 모바일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이상혁은 "시대를 잘 만난 것 같다. 한마디로 행운이 따랐다"며 "이제 시장이 많이 커졌기 때문에, 오랫동안 게이머로 활동할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한다. 또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천재이면서 자만하지 않고 노력하며, 더불어 여전히 이를 즐기고 있다면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이상혁이라는 선수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e스포츠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