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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키고 모르쇠'…교민 울린 한·터키 합작영화

6·25전쟁에 참전한 터키군인과 한국인 고아소녀의 실화를 다룬 한·터키 합작영화 프로젝트에 피해를 봤다고 호소하는 교민이 속출하고 있다.
터키 한인 김모(46)씨는 영화 '아일라'(Ayla)를 제작하는 터키 영화사 디지탈사나틀라르(Dijital Sanatlar)에 출연계약 파기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계획을 통지하는 공증문서를 법률대리인을 통해 최근 발송했다고 9일 밝혔다.



김씨의 법률대리인(변호사)에 따르면 작년 10월말 영화사는 김씨의 딸 A양(5)을 주연 아일라 역으로 출연시키는 계약을 체결했다.
양측은 보수와 차량 지원 등의 계약조건에 합의하고, 이런 내용을 이메일로 주고 받았다.
영화사는 계약서를 영문으로도 작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추후 전달하기로 하고, 김씨 모녀에게는 계약을 반드시 이행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영화사의 한인 직원 한모씨가 김씨 모녀에게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을 했다.
합의된 계약 조건에 따라 A양은 약 두 달간 평일 오후 영화사가 제공하는 차량을 이용해 영화사 사무실로 가서 터키어수업, 연기지도를 받고 대사를 암기했다.
이 때문에 A양은 다니던 학원을 중단했고, 김씨도 딸의 일정을 챙기느라 오후시간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지난달 초 한국에서 합작영화 '아일라' 주연으로 유명 아역배우가 캐스팅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캐스팅 변경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한 김씨가 놀라 영화사에 문의하자 "한국 측 제작 파트너가 임의로 주장하는 것일 뿐 A양 캐스팅에 변화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터키 영화사의 답변과 달리 한국에서 기사가 이어졌고, 회사는 돌연 연락을 끊었다
그간 회사와 의사소통에 창구 역할을 한 한모씨 역시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통화를 회피했다.
김씨는 "계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다면, 그에 따른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하지만 회사는 모른 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화사는 출연계약 자체를 부정했다.
회사 관계자 L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A양은 오디션만 봤을 뿐인데 계약을 체결했다고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민법상 구두 계약만 한 상태로 쌍방이 계약조건을 이행했다고 해도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본다.
김씨는 계약조건에 관해 영화사와 주고받은 이메일과 녹취 등을 갖고 있고, 서명만 남겨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변호사는 "회사의 주장대로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면, 근로계약도 없이 아동에게 일을 시킨 것이므로, 불법 아동노동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인으로서 한·터키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여, 얼마 안 되는 보수로 출연제의에 응했는데, 아이에게 상처만 남겼다"고 울먹였다.
A양의 아버지는 일본기업의 터키 주재원으로 일하는 재일교포 3세로, 일본에서 삼대째 귀화하지 않고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한인은 A양뿐만이 아니다.
이스탄불에서 통역과 배우로 활동하는 이모(38)씨 역시 아일라에 출연하기로 하고 에이전시를 통해 일정까지 통보받았으나 영화사가 일방적으로 취소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인 인력 알선 역할도 했다고 한다.
이씨는 "A양 이전에도 캐스팅을 둘러싼 교민사회의 불만이 제기되는 등 몇년간 잡음이 있었다"면서 "양국 우호에 기여한다고 선전하면서 한인들에게 '갑질'을 하는 행태에 화가 난다"고 했다.
tre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