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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위작 논란 '점입가경'…제2의 '미인도' 사건 되나

이우환 화백이 경찰이 위작 판정을 내린 작품 전체가 모두 자신이 직접 그린 진작이라고 밝히면서 이번 위작 논란이 제2의 '미인도' 사건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29일 오후 서울 중랑구 지능범죄수사대를 다시 찾은 이 화백은 경찰이 위작으로 판정한 작품을 검증한 뒤 나와 "13점 중 한 점도 이상한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전부 진품"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이 화백은 그 근거로 "붓이나 물감을 다른 것을 쓸 때도 있고 성분과 색채가 다를 수도 있다"며 "작가는 자기 작품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해당 작품이 과학 및 안목 검증을 통해 위작으로 판정됐다는 경찰의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는 발언이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위조 총책으로 지목된 현모(66) 씨로부터 압수한 작품이 위작이라고 결론 내리고 입증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작가 본인이 자신이 그린 진품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위작 논란은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천경자의 '미인도' 위작 논란과 마찬가지로 미궁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커졌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움직이는 미술관' 행사에 출품된 작품이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며 천 화백이 문제 제기를 한 이후 시작된 '미인도' 위작 논란은 2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한 미술 평론가는 "25년 전에는 천경자의 말을 믿을 것인가, 화랑협회의 말을 믿을 것인가의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이우환의 말을 믿을지, 아니면 경찰의 말을 믿을지의 문제"라며 "제2의 천경자 사건이 벌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의 해명만으로 위작 의혹이 해소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구속 기소된 화랑운영자 현 씨가 이미 법정에서 위작 사실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미술계에선 이런 결과가 예상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화백이 위작 논란이 제기됐을 무렵부터 경매에 출품됐던 그림을 포함해 "자신이 본 작품 중에는 위작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는 점에서다.
이 화백은 지난 26일 귀국한 직후 "내 말은 믿지 않고 이상한 사람들 말만 믿는다", "작가가 기본 아니냐. 사람을 왜 범죄자 취급하느냐" 등의 거친 언사를 쏟아내며 위작 판정 과정에서 경찰이 자신을 배제한 데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위작의 존재를 인정하면 그동안 이 화백의 작품을 거래한 화랑들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미술계 일각에서 제기된다.
또 위작 인정은 곧 작가 본인 못지않은 실력을 지닌 위작자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측면에서 애초 경찰 판정에 반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작가가 젊은 시절 그린 그림을 모두 기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술 검증 작업과 관련된 한 인사는 "작가가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경찰이 위작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의 허점을 꼬집는 목소리도 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의 진위 판단에 직접 개입하도록 해서는 안 됐다는 것이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작가가 자기 작품의 위작 검증에 직접적으로 나서는 사례는 외국에서도 찾기 어렵다"며 "경찰은 작가 보호 차원에서라도 내부적으로 조용히 해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위작 논란의 입증도 까다롭지만 훗날 결론이 나와도 승자 없이 패자만 남는다는 점이다.
한 미술 평론가는 "이우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인데 이런 논란에 휩싸였으니 모양새가 이상해졌다"고 꼬집었다.
한 경매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진위가 확실한 작품만 시장에 나오는 장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매에 전혀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lucid@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