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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추진비 흥청망청 지방의회 '감사 성역'…지자체 손 못대

지방의원들이 업무추진비를 쌈짓돈처럼 제멋대로 쓰지만 이를 감시하거나 견제하는 장치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가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감사를 하지 않는 탓이다. 업무추진비를 허투루 써도 이를 밝혀내 문제삼거나 제동을 거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
집행부는 예산 심의권을 가진 지방의회를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 전국 17개 시·도 중 9곳 지방의회 감사 '뒷짐'
전국 17개 시·도 중 9곳은 지방의회 사무처를 아예 감사하지 않는다. 부산과 대구, 인천, 울산, 경기, 충남, 전북, 경북, 경남 등이다.

핑계도 가지각색이다. "감사원과 행정자치부 감사를 받는데 굳이 집행부가 감사에 나설 이유가 없다"거나 "집행부 감시, 견제기구인 지방의회를 집행부가 감사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댄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의장이 집행부가 감사하는 것을 싫어한다"며 지방의회 감사가 껄끄러운 일임을 고백했다.
2010년 7월 제정된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 상 지방의회 사무처는 당연히 지자체 감사 대상이다. 정례회·임시회 등 의회 본연의 기능을 제외한 예산·회계 부분에서 혈세가 제대로 쓰였는지 따져보는 것은 지자체의 책무다.
행정자치부도 2014년 1월 중앙·지방 감사협력 포럼에서 지방의회 사무처 감사를 권고했다.
이후 집행부가 의회 사무처를 감사하는 것이 적정한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으나 9개 지자체는 여전히 감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업무추진비를 비롯한 지방의회 운영과 관련해 주민들은 자신들이 낸 혈세가 제대로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
나머지 8개 시·도는 지방의회 사무처를 상대로 감사권을 행사한다.
서울과 광주, 대전, 강원, 충북, 전남, 제주 등이다. 세종시도 오는 7월 말 시의회 사무처 감사에 나설 계획이다.

감사를 한다고 하지만 기대할 것은 없다. 시민사회단체가 정보공개를 청구해 파악하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계약 심사 때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거나 경비를 제출하면서 서류를 제대로 첨부하지 않은 사무처 공무원들을 가려내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작 주목해야 할 의회 의장단의 업무추진비 등 의회 운영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고개를 돌린다.
지자체 감사가 오히려 지방의원 비리에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의원들이 사용하는 업무추진비 액수는 결코 적지 않다. 전국 지방의회의 연간 업무추진비는 405억원에 달한다.
충북도의회를 예로 들면 연간 의장 5천40만원, 부의장 2명 총 5천40만원, 상임위원장 6명 총 9천360만원, 예결위원장 650만원이다. 2억원을 살짝 웃도는 업무추진비는 100억원에 달하는 도의회 예산의 2%를 차지한다.
충북도가 감사 때 확인하는 것이라고는 품의서를 제대로 올렸는지, 카드 결제는 했는지, 건당 50만원 이상 업무추진비를 썼을 때 명단을 첨부했는지를 살피는 게 고작이다.
업무추진비가 제대로 쓰였는지는 검증 대상이 아니다. 최근 말썽이 된 충북도의회 의장단의 업무추진비 부당 집행은 집행부 감사에서 드러난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밝혀낸 것이다.
이번에 밝혀진 사용 내역을 보면 지방의회 업무추진비가 얼마나 엉망으로 집행됐는지 알 수 있다.
김봉회 충북도의회 부의장은 1년 6개월 동안 부인이 운영하는 증평의 식당에서 18차례나 간담회를 열고 455만9천원의 식비를 지출했다. 부의장 업무추진비가 부인식당 매상 올리기에 쓰인 것이다.
이언구 의장은 같은 기간 147차례 연 간담회 중 50차례를 자기 지역구인 충주에서 해 '지역구 다지기'를 위해 의장 업무추진비를 썼다는 비난을 샀다.
강원도는 도의회를 감사해 관련 서류가 첨부되지 않은 54건 923만원의 법인카드 영수증을 찾아냈지만 어떤 용도로 집행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도의원 업무추진비도 감사 대상이지만 자칫 집행부와 의장단의 감정싸움으로 확대될 수 있어 접근이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기초의회 상황은 더 나쁘다. 광역의회 중 절반 가량이 형식적이나마 의회 사무처 감사를 하지만 시·군·구청이 의회를 감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부활 25주년을 맞은 지방의회가 지방정부의 견제를 받지 않는 토호세력의 권력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과 함께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 시·도 교차 감사 등 통해 '감시 강화' 목소리
지방의회 사무처가 감사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지방의원들의 업무추진비는 지방의원들의 쌈짓돈처럼 쓰인다.

국민의 혈세를 사사로이 써도 이를 제지할 수단은 없다. 간담회를 열어도, 술잔치를 벌여도 카드 영수증만 내면 그만이다.
금액이 50만원 미만일 땐 참석 대상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50만원 이상 썼을 경우 쪼개서 결제하는 편법도 동원된다.
행정자치부령인 '지방자치단체 업무추진비 집행에 관한 규칙'이 작년 4월 개정되면서 지방의회 업무추진비가 감사 대상에 포함됐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철저한 검증은 기대하기 어렵다.
영수증을 제대로 구비했는지 등을 따지는 회계감사 위주로 이뤄진다면 정작 업무추진비가 취지에 맞게 올바르게 집행됐는지를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감사가 아닌 '감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상세히 밝혀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방의회가 업무추진비 내역을 주기적으로 홈페이지에 올려 신뢰성을 높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가장 효과적 방법으론 시·도 간 교차 감사가 꼽힌다. 지자체가 서로 다른 도의회를 맡아 감사하는 방식으로, 의회 눈치를 보거나 봐주는 관행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현행법에 교차 감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고, 자칫 지방의회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관계자는 "업무추진비를 의정활동에 쓰지 않았다면 환수 조치를 하고, 윤리위원회에서 엄하게 징계하는 등 지방의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의회 스스로 도덕성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바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종구 김상현 김용태 변지철 배연호 손상원 심규석 최찬흥 한종구 홍인철 황봉규 기자)
k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