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기술의 정점, 박병호 스프레이 히팅의 위대함

'좌→중→우→다시 좌'

수수께끼나 길찾기 안내같지만, 사실은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의 박병호가 시즌 초반 기록하고 있는 홈런 4개의 타구 방향이다. 일부러 그렇게 치라고 해도 어려울 정도로 홈런 타구가 외야 사방으로 분산돼 날아갔다. 우리 식으로는 '부챗살 타법', 미국에서는 '스프레이 히팅'이라고 불리는 이상적인 타격이다. 이 4개의 홈런을 통해 박병호이 타격 기술이 얼마나 정점에 올라 있는 지 알 수 있다.

박병호는 20일(한국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타깃필드에서 열린 밀워키 브루어스와 홈경기에 6번 1루수로 선발 출전, 8회 네 번째 타석에서 대포를 터트렸다. 팀이 2-5로 뒤지던 8회말 1사후 타석에 나온 박병호는 상대 세 번째 투수 타일러 손버그의 초구 시속 78마일(약 126㎞) 커브를 받아쳐 비거리 415피트(약 126m)짜리 대형 1점 홈런을 쳤다.

초구 커브를 벼락같이 잡아당겨 좌측 담장을 넘겼다. 박병호는 시즌 첫 2경기 연속 홈런과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팀내 홈런 1위에 올라섰다. 더불어 좌→중→우로 이동했던 홈런 방향을 다시 좌측으로 끌어왔다.

이런 식으로 홈런 타구가 골고루 퍼지고 있다는 건 현재 박병호의 스윙이 매우 이상적인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상대 투수가 던진 공의 구종이나 로케이션을 유연하게 받아치면 타구의 방향도 고르게 퍼지게 된다. 바깥쪽 코스는 가볍게 밀어쳐 우측 방향으로, 몸쪽 공은 빠른 몸통 스윙을 통해 좌에서 중간 방향으로 날려보낸다.

말하긴 쉽지만, 실행은 쉽지 않다. 국내 타격 코치들이 타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원리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타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보통은 몸쪽으로 스윙이 쏠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리그 정상급 타자들은 연습 배팅 때부터 의식적으로 타구를 우측(우타자의 경우) 방향으로 보내려고 한다. 연습 때 그렇게 해둬야 실전에서도 자연스러운 스윙이 나오기 때문.

그런데 박병호는 그 가운데에서도 단연 톱이었다. 국내무대에서 4년 연속 홈런왕이었다. 2년 연속으로는 50홈런 이상을 날렸다. 그건 단순히 박병호의 힘이 좋아서가 아니다. 기술적으로도 최정점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코스과 구종에 아랑곳없이 홈런을 퍼트릴 수 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이 메이저리그 진출 후 시즌 초반에 더욱 정교해졌다. 4개의 홈런이 전방향으로 퍼지고 있는 데서 박병호가 많은 준비를 했고, 현재 기술적으로 최정점에 올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박병호의 기술적 완성은 타이밍과 배트 콘트롤에서도 알 수 있다. 3호와 4호 홈런이 특히 그렇다. 19일 밀워키전에서 바깥쪽 145㎞ 직구를 밀어쳐 우측 담장을 넘긴 3호 홈런.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처음으로 직구를 밀어쳐 만든 홈런이다. 앞서 2개의 홈런은 변화구를 공략했다.

이런 차이점 외에도 3호 홈런은 좀 특이하다. 4개의 홈런 중에서 유일하게 박병호가 임팩트후 팔로스루를 할 때 '투핸드'가 아닌 '원핸드'로 돌렸다. 공을 치는 순간 즉각 오른손을 풀고 왼손만으로 끝까지 스윙을 이끈 것. 이건 바깥쪽 투구 공략에 관한 박병호의 노하우다. 투핸드가 유지될 경우 더 강한 임팩트를 줄 순 있지만, 바깥쪽 공을 칠 때 스윙 궤도가 틀어지거나 타구가 파울이 될 위험이 있다. 박병호는 바깥쪽 공을 치는 순간 이런 부작용을 막으려고 오른손은 배트를 놨다. 수많은 경험과 연구에서 나온 본능적인 습관이 홈런을 만든 것이다. 현지 중계진이나 전문가들은 그래서 이 홈런에 대해 더욱 감탄하고 있다.

4호 홈런도 관찰 포인트가 있다. 직구 타이밍에 맞춰 스윙이 출발했다가 순간적으로 변화구에 맞춰 타이밍을 늦춘 것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국내 지도자가 늘 강조하는 변화구 공략 기술이다. LG 양상문 감독은 지난 15일 대전 한화전 때 나온 정주현의 만루홈런에 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좋은 타이밍으로 만든 홈런이었다. 직구 타이밍으로 배트가 나왔다가 커브를 치기 위해 잠시 타이밍을 늦춰 정타를 칠 수 있었다. 타격 코치들이 늘 강조하던 부분이 그때 나왔다." 즉, 변화구를 잘 공략에 관해서는 타이밍 변환이 순간적으로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 박병호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미 천재적 재능을 보여왔다. 타고나기도 했지만, 부단한 연습과 경험을 통해 노하우를 만들었다. 미국에서도 그게 통하고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