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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리뷰] '육룡이 나르샤' 길태미가 '병탄'한 1080분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누구보다 귀여웠고 누구보다 섬뜩했던 길태미(박혁권)가 강렬하고 먹먹하게 퇴장했다.

지난 1일 오후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김영현·박상연 극본, 신경수 연출) 18회에서는 고려의 권력을 틀어쥔 길태미(박혁권)와 홍인방(전노민)의 최후가 그려졌다.

지난 17회 역습에 성공한 육룡. 홍인방은 이성계(천호진)를 피해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의 가노 대근(허준석)의 배신으로 추포됐고 길태미는 검객답게 적수 이방지(변요한)와 마지막 승부를 겨뤘다. 특히 18회 문을 연 길태미와 이방지의 대결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여운을 남기며 '육룡이 나르샤' 최고의 명장면으로 등극했다. 말 한마디로 손쉽게 쥐락펴락했던 민초에 둘러싸여 이방지와 칼을 겨눈 길태미는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며 몰입도를 높였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순간에도 특유의 유들유들한 모습을 드러낸 길태미. 이런 길태미의 모습에 폭주한 이방지는 "이인겸 따까리"라며 신경전을 벌였다. 삼한 제일검 칭호를 놓고 떠나라는 이방지의 도발에 길태미 역시 "네놈을 놔두고 떠날 수 없지"라면서 날을 세웠다.

현(現) 삼한 제일검인 길태미의 무술은 가히 놀랄 노자였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길태미의 칼날에 이방지는 어깨 부상을 입었고 이를 본 길태미는 "아쉽다. 조금만 더 깊숙이 들어갔으면 팔을 잘라버릴 수 있었는데"라면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에 질세라 이방지 역시 "당신 공격 다 보여"라고 비아냥거렸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길태미와 이방지의 칼부림. 결국 이방지는 길태미의 배를 찌르는 데 성공했고 허를 찔린 길태미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배를 부여잡은 길태미에 돌을 던지기 시작한 고려 백성. 저마다 "나쁜 놈"이라며 혀를 차고 있을 때 길태미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며 한(恨) 맺힌 말을 토해냈다. 그는 "그럼 강한 놈을 짓밟아야 하나? 천만에. 세상이 생겨난 이래 약자는 언제나 강자한테 짓밟히는 거야. 천 년 전에도, 천 년 후에도 약자는 강자한테 빼앗기는 거라고. 강자는 약자를 병탄(빼앗아 삼킨다)한다. 강자는 약자를 인탄(짓밟고 빼앗는다)한다"고 악을 썼다. "이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야. 그러니까 빨리 승부를 내자"며 발악했다.

길태미의 말이 옳았다. 이방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강자는 약자를 빼앗고 삼키며 짓밟는 것. 이게 바로 과거이자 현실, 미래다. 태평성대는 없었다.

지옥 같은 세상을 단죄하고 싶었던 이방지는 길태미의 원대로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렀다. 그 결과 길태미는 목이 베이는 치명타를 입었고 솟구치는 피를 손으로 부여잡은 길태미에게 "강자는 약자를 병탄하지. 이렇게…"라며 한을 풀었다.

비록 백성의 고혈을 짜낸 길태미이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검의 도를 아는 무사로 최후를 맞았다. 그는 이방지를 향해 "이름이 뭐냐? 누구한테 죽었는지 알고 가야 할 거 아니냐"라며 힘겹게 입을 땠고 이방지는 "난 삼한 제일검! 이방지"라고 쐐기를 박았다.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순간 이들을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길태미의 쌍둥이 형, 길선미(박혁권)이었다. 그는 주검이 된 동생을 향해 "아우님, 그리 가셨는가? 그래도 죽는 순간에는 탐관오리가 아닌 검객이셨네 그려. 이제 부디 편히 쉬시게"라며 자리를 떴다. '미친 존재감'으로 '육룡이 나르샤'를 견인한 길태미는 이렇듯 장렬히 전사했다.

이날 방송은 민다경(공승연)이 분이(신세경)에게 일편단심인 이방원(유아인)을 보고 처음으로 질투를 느꼈고 정도전(김명민)이 이성계에게 "고려가 아닌 새로운 나라 조선을 건국할 것"이라는 엄청난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이인겸(최종원)의 계략에 빠진 최영(전국환)이 이성계와 등을 돌리는 등 새로운 사건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모든 국면을 다 잊을 만큼 초반 길태미의 죽음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전율과 여운을 남겼다. 18시간, 1080분, 6만4800초 '육룡이 나르샤'와 함께했던 길태미. 시청자의 영혼을 빼앗고 집어삼킨 병탄이었다. 벌써부터 '발칙하고 앙큼한' 길태미가 그리워진다.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