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메리트]상상초월 메리트의 세계

메리트 시스템. 특별한 공헌을 했거나 출중한 성적을 거둔 선수단에 보너스 형식으로 구단이 상금을 지급하는 포상 제도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일부 구단은 강한 동기 부여를 위해 메리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매일 야전에서 혈투를 벌이는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위한 넉넉한 군수지원. 그것이 메리트다. 일본 야구의 대표적인 명장 호시노 센이치 전 라쿠텐 감독은 경기 후 감독실로 선수를 불러 두둑한 돈 다발을 건네기도 했다.

올해 프로야구는 시즌 막판까지 순위 싸움이 치열하다. 삼성이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눈앞에 둔 듯 하지만, 2위 NC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KIA, 한화, 롯데, SK는 최근 한 달 동안 번갈아 가며 5위 고지에서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다. 4위 두산도 3위 넥센을 턱밑까지 추격한 상황. 하지만 사상 첫 144경기 체제를 맞아 선수들의 체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선발 투수들이 잇따라 조기 강판돼 없는 자원으로 벌이는 각 구단의 불펜 싸움이 처절할 정도다. 그래서 더 강력한 당근이 필요하다. 한 해 농사의 성패가 달려 있는 요즘, 메리트의 총액과 규모가 상상초월로 불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스포츠조선 취재 결과 10개 구단이 매 경기 거는 메리트는 평균 1000만원 정도다. 구단마다 메리트를 적용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통상 일주일 단위로 계산해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뒀을 때 메리트가 지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컨대 6경기를 했다면, 최소 3승을 거둬야 3000만원을 나눠 갖는 것이다. 즉, 2승4패를 했다고 2000만원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이와 달리 5할 승률이 잣대가 아닌 팀도 있다. 1승5패를 해도 1승에 따른 1000만원은 지급된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한 메리트는 선수단과 코칭스태프가 나눠 갖는다. 대체적으로 선수가 7, 코칭스태프 몫이 3이다. 몇 년전 A구단에서는 이 배분율을 놓고 선수와 코칭스태프 간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결국 6대4로 하자는 코칭스태프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순위 싸움이 치열해 질 수록, 매 경기 1000만원의 금액은 무의미해졌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2배는 기본이고 많게는 5~8배, 최고 30배까지 메리트가 껑충 뛰기 때문이다. A구단은 최근 B구단과의 2연전에 앞서 3억원의 메리트를 걸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자칫 2연패할 경우 순위가 하락할 수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당근책을 쓴 것이다. 확인되지 않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C구단 선수는 "이런 경기는 어떤 투수라도 던지고 싶어 한다.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평소보다 많은 메리트를 받을 수 있지 않은가"라며 "3억원이 걸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그 팀 유니폼을 입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D구단은 투자에 인색하다는 이미지와 달리 10개 구단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메리트를 거는 것으로 취재 결과 밝혀졌다. 이 구단도 한 달전 F구단과의 3연전에 2억원의 돈을 걸었는데, 2승 할 경우 1억원, 스윕 시에는 2억원을 선수단에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야구는 늘 변수가 많은 종목. 선수들은 한국시리즈 7차전의 각오로 경기에 임했지만 1승2패로 시리즈를 마쳤다. 결국 현장에 떨어진 메리트도 1승에 따른 5000만원. 한 시즌에 한 번 올까말까 한 2억원 찬스를 놓친 선수들은 두고두고 그 2패를 잊지 못했다.

한 경기에 4000만원이 걸렸다는 얘기가 거짓 정보인 것으로 드러나 현장이 허탈해 한 G구단도 있다. G구단은 매 경기 메리트가 500만원으로 상당히 짠 편이다. 5회말까지 뒤지던 경기를 뒤집었을 땐 1500만원이 되고, 연승을 타면 2배로 늘어나는 시스템이지만, 상대적으로 선수들이 포상금이 적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단이 얼마전 원정으로 떠나기 전 2경기에 총 8000만원을 걸었다는 소문이 내부적으로 퍼졌다. 한 경기 당 4000만원. 선수들은 들떠 있었다. 그러나 경기 당일 "그런 일은 없다"는 게 구단의 공식 입장이었다. 그리고 2연전 결과는 1승1패. 4000만원이 '거짓 정보'인 것으로 밝혀진 첫 날 패한 뒤 둘째날은 이겼다.

팀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년까지 한 구단이 한 시즌에 메리트로 쓰는 돈은 평균 6억원 정도라고 한다. 많게 쓰는 팀은 9억을 넘기고, 소속 선수들에게 '너무 하다'는 얘기를 듣는 팀이 3~4억 수준이다. 올해는 다르다. 2연전에 총 3억원을 내건 팀이 나올 만큼 아낌없이 돈다발을 푸는 팀이 많아졌다. 이를 두고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평가가 나오고, 몇 가지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지만 일단은 승률 1리가 아쉬운 마당에 각 구단들은 지갑을 열고 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