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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2005년 맨유 박지성과 2015년 토트넘 손흥민

10년 전 유럽 여름이적시장은 지워지지 않는 꿈이었다.

미지의 세계로 여겨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문이 드디어 열렸다. 그저 그런 팀이라면 그렇게 흥분되진 않았을 것이다. 전 세계 축구팬의 동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가 한국 축구와 손을 잡았다. 2005년 6월 '맨유맨' 박지성(34)이 탄생했다. EPL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당시의 기억은 여전히 머리 속을 맴돈다. 세계적인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영입하기 위해 직접 뛰어들었다. 2005년 5월 4일 물줄기가 바뀌었다. PSV 에인트호벤(네덜란드)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은 AC밀란(이탈리아)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출격했다. 1차전에서 0대2로 패한 PSV는 벼랑 끝이었다. 박지성은 경기 시작 9분 만에 벼락 선제골을 터트렸다. 숨죽여 지켜본 퍼거슨 감독도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의 마음을 빼앗는 순간이었다. PSV는 3대1로 승리하며 대반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1% 부족했다.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의문부호를 거둔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며 맨유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박지성도 놀랐다. 취재 과정에서 이 소식을 들은 기자도 귀를 의심했다. 이적 과정을 지켜보면서 재미난 일도 있었다. 영국 언론에선 맨유의 라이벌 첼시가 박지성의 맨유행을 가로채기 위해 영입전에 뛰어들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박지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PSV를 이끌던 '원조 스승'인 거스 히딩크 감독의 만류도 있었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맨유행이 결정됐다.

기자는 박지성의 처음을 함께했다. 2005년 7월 홍콩(프로올스타)→중국 베이징(베이징 현대·현 베이징 궈안)→일본 도쿄(가시마 앤틀러스, 우라와 레즈)로 이어지는 맨유의 아시아 투어를 동행했다. 박지성은 베이징전에서 골을 터트리며 중국 팬들의 시샘과 부러움을 샀다. 가시마전에선 왼쪽 눈두덩이 찢어져 8바늘이나 꿰맸다. 부상으로 우라와와의 최종전에선 결장했지만 맨유의 유니폼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박지성을 영입한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 것인가는 아시아 투어를 통해 입증됐다. 지성이는 움직임이 매우 뛰어났을(great movement) 뿐 아니라 상상력이 풍부한 플레이(imagination running)를 펼쳤고, 또 빠르고(quickly), 좋은 기회들을 많이 만들어냈다(create a lot of chances). 결론적으로 박지성의 활약은 대만족이다." 우라와전을 마친 퍼거슨 감독의 총평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맨유에서의 생활은 신화의 연속이었다. 박지성은 EPL은 물론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아시아 축구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선수 생명이 걸린 오른무릎 재생 수술 등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는 맨유에서 7시즌을 뛰며 205경기에 출전, 27득점을 기록했다. 2012년 7월 QPR로 이적한 박지성은 PSV를 거쳐 지난해 5월 은퇴했다.

끝이 아니었다. 박지성은 지난해 10월 맨유 앰버서더에 위촉됐다. 보비 찰튼을 비롯해 데니스 로, 브라이언 롭슨, 게리 내빌, 앤디 콜, 피터 슈마이헬에 이은 7번째의 영예였다. 비유럽 국가 출신 첫 앰버서더였다. 레전드로 당당히 인정을 받았다.

박지성이 맨유에 입성한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2015년 또 한 명이 여름 이적시장을 뒤흔들었다. 박지성의 맨유 시절 배번은 13번이었다. 공교롭게 13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의 주인공은 손흥민(23)이 차지했다. 그는 최근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을 떠나 EPL 토트넘에 입성했다. 박지성의 10년 전 이적료는 400만파운드(약 73억원)였다. 10년 뒤의 손흥민은 또 한번 신기원을 이룩했다. 이적료는 무려 3000만유로(2200만파운드·약 400억원)를 기록했다. 박지성의 이적료와 비교해 5배가 넘는다. 손흥민은 아시아 최고 이적료 기록도 경신했다. 아시아 '넘버 원'의 위상을 이적료를 통해 증명했다.

손흥민은 '될성부른 미래'였다. 한국에서 고교를 중퇴한 후 미련없이 독일로 떠났다. 함부르크 유소년팀을 거쳐 2010∼2011시즌 1군에 이름을 올렸다. 2년 전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그는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EPL은 차원이 다른 무대다. 손흥민이 박지성을 보며 어릴 때부터 꿈꿨던 무대가 EPL이다. 꿈이 이루어졌다.

EPL에서 손흥민의 축구 인생 2막이 시작됐다. 분데스리가에서 그는 지워지지 않는 한국 축구의 영원한 레전드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을 뛰어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제는 박지성이다. 그는 박지성이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골결정력, 개인기는 박지성보다 뛰어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박지성의 트레이드마크인 성실함이 더해져야 한다. 그래야 박지성 위에 설 수 있다. 토트넘을 넘어 EPL 최고의 구단에 안착하기 위해서도 더 굵은 땀을 흘려야 한다.

손흥민의 이적을 바라보는 한국 축구는 행복하다. 그는 여전히 젊고, 성장 가능성도 한없이 열려 있다. 손흥민이 EPL에서 맘껏 꿈을 펼치기를 바란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