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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한-일전 간과해선 안될 '유념사항'은?

'방심은 금물이다.'

한국축구가 2015년 동아시안컵에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중국 경계령'으로 신중 행보를 보였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61)은 중국과의 1차전에서 2대0 완승을 거두자 "우승이 목표"라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8년 이후 7년 만의 동아시안컵 우승에 바짝 다가선 느낌이다. 축구팬들의 기대치와 관심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5일 오후 7시 20분 펼쳐지는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의 결전이 분수령이다. 이번 한-일전은 공교롭게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미묘한 상황속에서 열리는 것이라 관심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중국전 완승에 따른 자신감, 국내파 젊은피들의 성공적 데뷔 등 여러모로 한국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 일본은 북한과의 1차전에서 1대2로 역전패하면서 한국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경계의 끈을 늦춰서는 안된다. '승승장구'를 바라는 한국에 맞서 일본은 '전화위복'을 노릴 게 분명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내부 전력 다듬기에만 치우쳐서는 안된다. 경기 외적으로도 사소한 부분까지 유념해야 한다. 국민 정서상 모두가 반드시 이기고 싶은 상대 일본. 그 일본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할릴호지치 위기설의 함정?

사실 승부의 세계에서 적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현재 불행 속이다. 사령탑인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63)이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0위인 일본이 FIFA랭킹 129위 북한에 패한 게 기폭제가 됐지만 지난 6월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에서 FIFA랭킹 150위 싱가포르와 충격의 0대0 무승부를 기록한 것에 대한 책임론까지 얹어졌다. 1993년 FIFA랭킹이 만들어진 이래 세자리 순위 팀에게 2경기 연속 무승부 이하 성적을 낸 것은 일본 축구 사상 처음이다. 할릴호지치 감독이 북한전 이후 기자회견에서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며 외부에 책임을 돌리는 발언까지 해 일본 언론의 공분을 샀다. 일본축구협회의 다이니 구니야 회장과 다지마 고조 부회장은 회복훈련이 열린 3일 이례적으로 훈련장을 방문해 할릴호지치 감독과 특별면담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훈련 시작 전 3분, 종료 후 5분 두 차례 이뤄진 현장 면담에서도 할릴호지치 감독은 J리그 일정으로 인한 훈련시간 부족 등의 불만을 표출했다. 다이니 회장은 "J리그 등과 논의할 것"이라며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뒤로는 경질 가능성을 흘리며 긴장감을 올렸다. 일본 스포츠 전문매체 도쿄스포츠는 4일 '남은 한국, 중국전에서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경우에 대해 다이니 회장이 "패한다면,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라며 감독의 진퇴문제로 연결될 것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향후 러시아월드컵으로 향하는 길에서 잠재적 라이벌인 한국, 중국을 넘지 못하면 지도력 자체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도쿄스포츠의 지적이다. 한데 묘한 데자뷰가 떠오른다. 브라질월드컵이 열리고 있던 2014년 6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서 알제리대표팀을 이끌던 할릴호지치 감독은 자국 언론과 싸우고 있었다. 알제리축구협회 역시 할릴호지치 감독을 곱게 보지 않았다. 할릴호지치 감독을 바라보는 알제리의 반응은 냉소 그 자체였다. 벨기에와의 1차전 패배가 만든 풍경이었다.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 일본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에 1대2로 역전패한 뒤 변명을 하자 일본 언론은 비판 일색이다. 시오야마 스포츠호치 기자는 "핑계대지 않겠다더니 입만 열면 핑계다"고 비아냥댔다. 3일 훈련 중에 벌어진 할릴호지치 감독과 일본축구협회 수뇌부간 면담도 마찰로 비쳐졌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다이니 일본축구협회장에게 "일본 축구의 위기다. 뭔가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열변을 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팎에서 흔들리는 모습이다.

공교롭게 이번에도 할릴호지치 감독의 다음 상대는 한국이다. 브라질월드컵 때도 그랬다. 그때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며 한국과의 2차전을 준비했다. 알제리는 완벽한 우위를 보이며 한국을 4대2로 제압했다. 경기 후 알제리 언론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오는 할릴호지치 감독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한국전 승리를 바탕으로 알제리를 16강으로 이끈 할릴호지치 감독은 영웅이 됐다. 이번에는 월드컵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보인다. 변화를 줄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전에 이어 한-일전까지 패할 경우 할릴호지치 감독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이미 해외파가 총출동했던 싱가포르전 무승부로 일본팬과 언론의 의구심 섞인 시선을 받고 있는 할릴호지치 감독이다. 일본대표팀을 20년째 취재하고 있는 모리 무사후미 재팬풋볼 기자는 "이번 대회는 할릴호지치 감독 스스로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다. 한국전까지 패할 경우 위기는 가속화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한번 한국전을 통해 영웅과 역적의 갈림길에 선 할릴호지치 감독이다. 그는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가면 이기지도 못하고 돌아가게 된다!"며 선수들을 자극했다. 일본 축구 원로들은 '싸움닭'이 되라고 부추긴다. 궁지에 몰린 '쥐'신세가 된 일본이 물려고 달려들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제2의 무토 유키를 조심하라

지난 2일 중국과의 1차전에서 한국 축구팬들을 즐겁게 한 반짝 스타는 김승대(24·포항)와 이종호(23·전남)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인 이들은 A매치에 데뷔하자마자 1골-1도움(김승대), 1골(이종호)로 화끈한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비슷한 시각 일본 열도에서도 현지 축구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가 있었다. 미드필더 무토 유키(27·우라와)다. 북한에 역전패하는 바람에 다소 빛이 바랬지만 그의 선제골은 특이한 기록으로 남았다. 무토는 3분 만에 A매치 데뷔전 골을 터뜨렸다. 공식 기록지에는 3분이지만 실제 방송중계 시간은 2분40초를 찍고 있을 시점이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축구 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나온 A매치 데뷔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김승대가 이종호의 골을 도왔던 것처럼 무토는 같이 A매치 데뷔전에 나온 수비수 엔도 와타루(22·쇼난)의 도움을 받았다. 일본은 이제 한국전에서 무토의 새로운 기록작성을 독려하고 있다. 사상 6번째로 A매치 데뷔전 데뷔골에 이은 연속골의 주인공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무토가 데뷔골 이후 100여통의 축하 문자를 받았다는 신변잡기까지 소개한 뒤 '무토가 북한전 패배의 아쉬움을 털기 위해 한국전에서 기필코 승리를 안겨주는 골을 다짐하고 있다'고 기대한다. 한데 경계 대상이 무토만 있는 게 아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J리그 일정으로 인해 북한전에서 체력적인 문제가 드러났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전 선수기용에서는 대폭적인 변화를 줄 것으로 알려졌다. 제2의 무토를 노리거나 한국전의 스타로 주목받고 싶어하는 후보군이 넓어지는 셈이다. 특히 일본의 차세대 에이스로 꼽히는 공격수 우사미 다카시(23·감바 오사카)는 "공격이 최상의 방어다. 2∼3골을 넣으면 한국도 체념 무드가 될 것"이라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올해 A대표팀에 발탁돼 5경기 출전, 1골을 터뜨린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에 패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반드시 설욕전"을 외친다.

이래저래 죽기 살기로 달려들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일본. 슈틸리케호가 어떤 요리법으로 응수할지 관심이 모아진다.최만식·우한(중국)=박찬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