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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안컵]'원팀' 앞에 일본은 없다

후반 9분, 시원한 중거리 슈팅으로 일본의 골망을 흔든 조소현(현대제철)이 벤치를 향해 내달렸다. 결연한 표정으로 심서연(이천대교)의 '4번 유니폼'을 번쩍 들어올렸다. 1일 중국전,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 맹활약하다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귀국길에 오른 '동료' 심서연을 위한 감동의 세리머니었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은 4일(한국시각) 중국 우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일본과의 2015년 동아시안컵 여자축구 2차전에서 극적인 2대1 역전승에 성공했다. 전반 30분 나카지마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한국은 후반 극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조소현의 동점골에 이어 후반 추가시간 장슬기(고베 아이낙)가 얻어낸 프리킥을 교체투입된 전가을(현대제철)이 환상적인 오른발로 성공시켰다. 종료 휘슬과 함께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들어왔다. 경기장을 누빈 11명, 그들을 벤치에서 응원한 11명, 그리고 부상으로 함께 하지 못한 심서연까지, '원팀'의 정신이 극일의 키워드였다.

▶우리는 심서연과 함께 뛴다

심서연은 4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후방을 든든히 지켜주던 심서연의 공백에 태극낭자들이 똘똘 뭉쳤다. 권하늘(부산 상무)이 여자 대표팀 단체 대화창에 '유니폼 세리머니'를 제안했다. 모두가 찬성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 부상한 심서연을 본 조소현의 마음은 특히 더 무거웠다. 조소현은 "끝까지 함께 하고 싶었는데 서연이가 부득이하게 먼저 돌아갔다. 서연이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자고 이야기가 됐다"며 "내가 서연이를 위해서 하고 싶었다. 먼저 골 넣는 사람이 하자고 했는데 내가 골을 넣게 됐고 세리머니까지 하게돼 정말 기뻤다"고 했다.

심서연의 부상은 팀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심서연 몫까지 뛰자고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힘들 때일수록 뭉치는 여자대표팀이다. 지난 캐나다여자월드컵 때도 팀을 이탈한 부상자들을 위해 함께 뛰었다. 위기를 기회 삼았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속에 탈진할 정도로 뛰었던 중국전 후 사흘만에 갖는 일본전, 그라운드에 주저앉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뛰고 또 뛰었다. '원팀'의 힘이었다. 조소현은 "우리가 사이가 좋다. 서로 도우려는 마음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윤 감독은 "심서연이 가기 전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끝까지 가지 못해 내가 미안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내 마음을 아는지 선수들이 잘 뛰어줬다. 이런 것이 우리 팀의 힘이 아닌가 싶다"고 웃었다.

▶승부를 뒤집은 88라인의 힘

"88언니들이 우리를 구해줬어요." 강유미(화천 KSPO)의 말대로 경기를 뒤집은 것은 '88라인'이었다. '캐나다여자월드컵 16강 기적'의 주역인 1988년생 동갑내기 조소현과 전가을은 부상으로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두 선수 모두 2일 중국전에서도 뛰지 못했다. 윤 감독은 한-일전 필승카드로 조소현-전가을 카드를 꺼냈다. '캡틴' 조소현은 전반 부상여파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윤 감독이 칼을 빼들었다. 호흡이 잘 맞지 않던 권하늘을 제외하고 조소현을 중원에 홀로 포진시킨 4-1-4-1 포메이션으로 바꿨다. 그러자 조소현의 경기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0-1로 끌려가던 후반 특유의 해결사 본능이 꿈틀거렸다.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승부를 뒤집은 것은 전가을이었다. 후반 30분 교체투입된 전가을은 절묘한 프리킥으로 한국에 승리를 안겼다. 윤 감독은 "전가을이 항상 득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흐뭇해했다. 전가을은 "프리킥 전에 코너킥 부터 킥 감이 좋았다. 가까운 포스트로 찬다는 생각으로 찼는데 생각보다 잘 맞아 나도 놀랐다. 세리머니를 길게 못해 아쉬울 뿐"이라며 웃었다.

▶일본은 없다

태극낭자들이 한-일전에서 먼저 승전보를 울렸다. 여자 대표팀이 일본을 상대로 사상 첫 2연승에 성공했다. 2005년 첫 우승 후 10년만의 동아시안컵 탈환에도 한발 더 다가섰다. 이제 태극전사들의 차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남자 대표팀은 5일 오후 7시20분 일본과 맞닥뜨린다. 태극전사들은 함께 모여 여자 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봤다. 기운을 이어 받은 태극전사들의 무기도 역시 '원팀'이다. 김신욱은 "개개인은 일본에 밀릴 수도 있지만 '팀' 한국은 절대 지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한-일전 3연패의 늪에 빠진 태극전사들이 일본을 넘을 경우 동반우승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 광복 70주년, 남녀축구에게 일본은 없다.

우한(중국)=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