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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수의견' 곽인준 '버티면 기회는 온다, 반드시'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영화 '소수의견'은 외압 논란 속에 2년 만에 세상 빛을 봤다. 그간의 우여곡절이 무색할 만큼, 한국 법정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탄탄한 스토리, 섬세한 연출력, 배우들의 열연이 삼박자를 이룬 결과다. 안타깝게도 관객 스코어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영화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본 눈 밝은 관객들도 많았다. 그들은 몇 군데 없는 상영관을 찾아다니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관객들 눈에 띈, 낯설고도 익숙한 얼굴이 있다. 배우 곽인준(45)이다.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에게 사건의 내막과 결정적 정보를 제공해 윤진원이 철거민 변호를 맡기로 결심하는 데 중요 역할을 하는 야당 국회의원 박경철 역으로 등장한 배우다. 사건이 언론의 조명을 받자 이를 자신의 정치적 이권에 활용하는 이중적 면모로 관객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안기기도 했다.

곽인준은 작은 역할이지만 힘 있는 연기로 영화의 중요 매듭 하나를 책임졌다. 신스틸러다운 존재감이다. 덕분에 요즘 새롭게 경험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SNS 팔로워가 크게 늘었고, 관객과의 대화(GV)에도 초대받았다. "이 영화만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쿵쿵 뜁니다. 2년 만에 개봉한 거라 애틋하기도 하고요. 관객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봐주시고, 더구나 제 배역까지 기억해주셔서 무척 놀랐어요. 지금도 SNS에 올라오는 관객들의 영화평을 볼 때마다 감동받습니다. 여운이 가시질 않네요."

곽인준은 실제 국회의원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분위기를 익혔다. 영화 흐름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꽤 고심해서 연기를 준비했다. 박경철 의원이 윤진원을 만나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은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촬영해 완성했다고 한다. "한땀 한땀 바느질하듯 만든 영화"라는 그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에피소드다.

곽인준이 '소수의견'을 특별하게 여기는 건, 2년 전 촬영장의 열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 리딩 때부터 배우와 스태프 모두 절실함을 갖고 임했다. 그 현장에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곽인준은 벅찼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만난 자리. 스태프들과 회포를 풀며 그때 그 뜨거움을 다시 느꼈다. "사실 2년 전에는 이 영화에 거는 기대가 굉장히 컸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더군요. 안타까웠고 조급하기도 했죠. 역시 배우란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직업이 아니구나, 또 한번 깨달았죠."

배우의 길을 택한 이상 '기다림'은 숙명인지도 모른다. 작품의 선택을 받아야만 배우의 삶이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곽인준은 기다림에 익숙하다. 연기에 입문한 20대 초반부터 "버텨보자"고 다짐하며 걸어온 시간이 20여년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스무살 때 연극판에 뛰어들었다가 스물셋에 학교로 돌아가 연기를 전공했고, 20대 후반에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왔지만 그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어서 연기에 전념할 수 없었다.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1999년 즈음인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대로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하하." 돈을 모아서 다시 연기를 하자는 생각에 시작한 장사도 뜻대로 되지 않아 더 큰 곤경에 빠졌다.

절망스러운 현실에 탈출구가 된 것은 역시나 연기였다. 첫 상업영화 출연작 '범죄와의 재구성'(2004) 이후로는 한눈 팔지 않고 연기로 생계를 꾸렸다. 특히 곽경택 감독의 영화 '태풍'(2005)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 영화 덕분에 영화 관계자들에게 얼굴을 알렸고, 그를 부르는 곳이 많아졌다. 그때부터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의 생활이 가능해졌다. "'태풍' 촬영 중이던 어느 날, 곽 감독님이 제 연기에 아무 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더군요.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그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여배우들', '통증', '연가시', '이웃사람', '동창생', '극비수사,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 무수한 작품의 조단역을 거쳤다. 얼굴은 익숙해도 이름은 낯선, 무명 아닌 무명의 시간. 곽인준은 "가족들의 믿음,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의 인정,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여러 경험들이 제 몸 어딘가에 저장돼 있는 것 같아요. 제겐 연기의 자양분이죠. 끈질기게 버티면 분명 기회는 오는 것 같아요. 제가 '소수의견'을 만난 것처럼요. 마흔 중반에 이런 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제게 큰 의미가 있어요.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됐잖아요. 지금도 살짝 들떠 있어요.(웃음)"

곽인준의 행보는 더 바빠질 것 같다. 얼마 전 영화 '판도라' 촬영을 마쳤고, '김선달'을 한창 촬영 중이며, 최근엔 '사랑하기 때문에' 촬영을 시작했다. 앞으로 스크린에서 자주 만나게 될 배우. 곽인준이란 이름을 미리 기억해두는 것도 좋겠다.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