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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벗은 '심야식당', 연기력 부재+원작 몰이해 '핵노답'

SBS 드라마 '심야식당'이 첫 선을 보였다.

'심야식당'은 동명의 일본 인기 만화 및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은 특유의 따뜻한 힐링 스토리와 '쿡방'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 워낙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 작품을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큰 관심이 집중됐다. 여기에 연기파 배우 김승우가 2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더욱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어째 심란한 모양새다.

▶ 원작 몰이해가 낳은 참사

가장 중요한 건 컨셉트를 잘못 잡았다는 것. '심야식당'은 게이 스트립걸 야쿠자 등 비주류들이 새벽녘 '재료만 있다면 뭐든지 다 만들어준다'는 마스터의 가게에 모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고소득층의 이야기가 아닌 만큼, 전체적인 극 분위기가 서민적이며 소박하다. 가게는 일본의 작은 선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귿(ㄷ)자 테이블 형태로 꾸며졌고, 소품들도 투박하다. 가정집에서 볼 법한 접시,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프라이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음식 역시 지친 사람들이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먹기 편한 간단하고 정갈한 가정식을 기본으로 한다. 돈지루 정식을 기본으로 명란구이, 오차즈케, 고양이밥, 계란말이, 비엔나 소시지 등이 등장했다.

그런데 한국판 '심야식당'은 이 기본 컨셉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하다. '서민 정서를 그리겠다'던 기획의도와 방송에서 보여진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우선 일본 정서를 한국 정서에 맞췄다기 보다는 원작의 대표 장면을 따라하기에 급급한 듯 하다. 국내 시청자들은 선술집 구조보다 작은 실내 포차 분위기에 더 익숙하다. 그런데 국내 사정과 다른 세트 배치는 어색함을 남겼다. 주인을 '마스터'라고 부르는 부분 역시 인위적이었다. 여기까지는 원작을 살리고 싶었던 제작진의 방침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소품과 음식을 보면 의아함만 남는다. 한정식집에서나 볼법한 고급 도자기 그릇 세트에 우드 트레이, 얼룩하나 없는 조리도구 등 '서민적'이라고 표현하기엔 상당히 난감한 소품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심야식당'의 정체성은 정말 동네에 한군데 정도 있을 법한 작고 정감가는 가게에서 나오는 소박한 서민 음식인데, 아예 한정식을 차려냈다. 그런데 또 원작을 의식한 건지 가격은 단 돈 1000원이다. 김밥 한줄도 보통 1500원에 팔리고 있는 시대에 수많은 밑반찬을 포함한 한상이 고작 1000원이라는 설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디테일도 떨어졌다. 식탁에는 젓가락 숟가락 통조차 없고, 냅킨도 없다. 간장 후춧가루 등 조미료 통도 없다. 결국 원작을 살려내는데도, 그렇다고 한국의 서민 식당을 표현하는데도 실패한 꼴이다.

▶ 스토리 개연성-연기력의 부재

팬들이 원작에 열광했던 것은 '심야식당'만의 인간적인 정서와 힐링 스토리다. 아무 관련없는 사람들이 마스터의 가게에 찾아와 차츰 마음을 열고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추억의 음식과 가게 사람들에게 치유받는 과정에서 휴머니즘을 느꼈다. 한국판 '심야식당' 역시 기본 줄기는 가져가려 한 모양새다. 1화 '가래떡 구이와 김'편에서는 가난한 아르바이트생 민우(남태현)와 그의 키다리 아저씨 류씨(최재성)의 이야기를, 2화 '메밀전'편에서는 테러로 잊혀진 하이틴스타 정은수(심혜진)과 힘든 가정 형편에 고통받고 있는 소녀가장의 이야기를 그렸다. 최저 시급, 청소년 노동력 착취, 열정 페이 등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문제점을 꼬집어낸 것. 그러나 과도하게 스피디한 이야기 전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원작에서는 등장인물을 충분히 등장시키며 그들이 마스터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을 줬다. 그런데 한국판 심야식당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가게에 갑자기 찾아온 사람이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여배우의 인생이 끝장났다고 고백하고,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소녀가장이 아빠에게 맞았다며 가게를 찾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식이다. 사고로 은퇴한 스타가 과거 자신의 모습과 닮은 배우 지망생을 보고 기회를 주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차라리 원작처럼 소녀가장이 충분히 가게를 찾아오고 다른 사람들 혹은 마스터에게서 위안을 얻고 그들과 신뢰를 쌓는 시간을 줬다면 이해도가 생겼을 것이다. 또 마스터 역시 싼값에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원작처럼 조용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설정이어야 했다. 여기에 코스즈상과 같은 비중 큰 조연 캐릭터가 성소수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거된데 반해 그 빈자리를 채울 캐릭터는 보이지 않으니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심야식당'은 마스터 외에 독특한 캐릭터들의 아기자기한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판 '심야식당'은 그런 잔재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남태현의 연기력은 '희대의 발연기'로 도마 위에 올랐고, 체리(강서연)의 어색한 사투리 연기는 손발을 떠나 심장을 오그라들게 했다. 다른 캐릭터들도 이렇다할 개성을 찾긴 어려웠다. 그나마 마스터 역할에 완벽 적응한 김승우와 최재성이 극을 이끌어가는 정도였다.

▶ 미흡한 쿡방

'심야식당'의 또다른 볼거리는 바로 '쿡방'이다. 조그만 주방에서 마스터가 요리하는 장면은 원작 드라마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던 부분이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매우 세밀하게 담아내며 식욕을 자극했다. 그러나 한국판 '심야식당'은 이 부분을 놓쳤다. 지나치게 데코레이션에 신경쓰다보니 쌩뚱맞게 놓여있는 파프리카, 적나라하게 상표명을 보여주고 있는 코코아 등 어색한 소품 위치가 포착됐다. 마스터가 음식을 요리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 소리와 비주얼을 다 놓친 것은 물론, 일정 앵글만을 고집하다 보니 요리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에 배우들의 먹방도 한 몫 했다. 맥주 CF와 같은 시원함은 아니더라도 정신없이 음식을 흡입하며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모습이 한국판 '심야식당'에서는 보여지지 않았다. 시청자들 역시 '저렇게 맛없어 보이는 맥주 먹기는 처음', '배우들이 너무 맛없어 보이게 먹는다', '야식 먹고 싶을까봐 걱정했는데 다이어트 걱정 안해도 될 듯'이라는 등 혹평을 쏟아냈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