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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스토리]'지메시'지소연의 평발,기적을 꿈꾼다

"어머, 진짜 완전 평발이네!"

6월 생애 첫 캐나다여자월드컵(6월6일~7월5일, 현지시각)에 도전하는 '지메시'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의 발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74경기 38골' A매치 최다골 기록 보유자, 잉글랜드 진출 첫해, 영국프로축구선수협회(PFA) '올해의 선수상' '런던 최고의 여자선수상' '여자슈퍼리그(WSL)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모조리 휩쓴 '마법같은' 그녀의 발을 직접 보고 싶었다. 풍문으로 들었던 대로 심한 평발이었다. 마룻바닥에 발바닥 전체가 딱 붙었다. 90분 풀타임을 끊임없이 뛰어야 하는 축구선수에게 '평발'은 분명 악조건이다."좀 심하죠?"라며 싱긋 웃는다. TV를 보는 동안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도, 지소연은 스트레칭을 쉬지 않았다. 끊임없이 움직였다.

▶'이문동 골목대상' 지메시의 평발

대한민국 여자축구 에이스, 지소연은 평발이다. '맨유의 심장' 박지성과 똑같다. 남들보다 쉽게 물집이 잡히고, 쉬이 피로해지는 발을 가졌지만, 지소연은 "괜찮아요. 별로 불편한 건 없어요"라며 씩씩하게 웃는다.

알려진 대로 이문초등학교 2학년때 감독의 눈에 띄어 또래 남학생들과 함께 축구를 시작했다. 가입신청서에 쓰인 주민등록번호 '2'자를 보고 "어? 너, 여자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어머니 김애리씨는 "우리 소연이는 이문동에서 유명했다. 총칼 들고 전쟁놀이 하다 동네 창문들 다 깨먹고 다녔다"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소문난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한번은 어떤 엄마가 아이를 대동하고 따지러 왔다. 자기 애가 소연이한테 맞았다면서…." 지소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큼직한 남자아이였다. "우리 애는 딸인데요 했더니 말도 못하고 그냥 돌아가더라"며 하하 웃는다.

사진을 보면 의문이 절로 풀린다. 당찬 꼬마 지소연은 3㎜ 내외의 '스포츠형'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다. 축구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던 '까까머리' 소녀는 남자들과의 몸싸움, 기싸움, 수싸움에서 한치도 밀리지 않았다. 훈련도 똑같이 받았고, 당시 학원축구에 흔했던 단체기합도 똑같이 받았다. 어머니 김씨는 "무조건 같이 맞겠다고 했다더라. 엉덩이가 시꺼멓게 멍들어 와서도, 집에 와선 말 한마디 안했다. 어릴 때부터 독종이었다"고 했다.

지소연의 이문초등학교는 2002년 제주시장배 전국초등학교 축구대회에서 우승했다. 5학년 지소연은 '홍일점' 선수였다. 당당히 주전으로 나서 총 10골을 몰아치며 특별상을 받았다. 그때 함께 공 차던 동기들 가운데 지소연만 유일하게 축구선수가 됐다. 지소연의 2년 선배인 K리그 챌린지 안양FC의 안성빈은 그 시절을 이렇게 추억했다. "소연이는 어렸지만, 남자선수들 못지 않게 볼을 잘 찼다. 친구들이 소연이 앞에서 바지를 벗는 짓궂은 장난으로 소연이가 울었던 기억도 난다." 어려서부터 남자들과 함께 뛰고 노는 것이 당연했던 지소연의 축구 스타일은 빠르고 강하다. 상대를 제칠 때의 짜릿함이 좋아 축구를 선택했다던 그녀는 '승부사'다. 평발도, 성별도 그녀에겐 장애가 되지 않았다.

▶"믿는 만큼 잘 자라준 딸, 고마워"

어머니 김애리씨와 지소연은 친구같은 모녀다. "소연아, 나중에 빌딩 지어줄 거지. 엄마는 빌딩이 좋아"라는 익숙한 농담에, 스트레칭을 하던 딸이 "알았어, 알았어"를 외친다. 모전여전, 유쾌한 웃음소리, 활달하고 씩씩한 삶의 태도가 빼닮았다. 어디서나 당당하고 씩씩하다. 착하지만 독하다. 끼도 많고, 흥도 많다. 에덴 아자르, 존 테리 등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즐비한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위아래로 흔들며 "첼시! 첼시!"를 외쳐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올해의 남자선수상' 아자르의 소심한 '첼시!' 구호보다 강력했다는 현지 평가(?)가 있었다. 어머니 김씨는 "어디 가도 기죽지 않고, 내 딸이지만 대단하다"며 웃었다.

엄마는 '나홀로' 일본, 영국에서 믿는 만큼 자라준 딸이 그저 대견하고 고맙다. 지소연은 약한 몸으로, 힘든 일을 이어가는 엄마를 늘 걱정한다. 지소연이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성장한 데는 딸의 꿈을 절대적으로 믿고 지지해준, 엄마의 공이 컸다. 축구하는 여자아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 집안의 반대를 이겨낸 건 엄마였다. "소연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우리 소연이는 알아서 잘할 것, 틀림없이 잘될 것"이라는 엄마의 입버릇과 무한믿음은 결국 '현실'이 됐다. 지소연이 한국에 머무는 한두달이 엄마에겐 가장 바쁘고 행복한 시간이다. 딸이 먹을 보약을 챙기고, 운동 스케줄을 챙기는 일이 즐겁다. 2002년 자궁경부암 판정도, 가정의 시련도, 딸과 함께, 딸의 축구를 보며 이겨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딸이 골을 넣으면 세상 시름이 절로 잊혔다. 엄마는 딸의 팬이자, 김혜리, 임선주 등 딸 친구들의 팬이자 여자축구의 팬이다. "장차 손녀가 생겨도 축구를 시키고 싶다"고 했다.

캐나다여자월드컵은 이들 모녀의 오랜 꿈이다. 지소연이 엄마와 가족을 위해 뛰듯, 엄마에게도 지소연은 삶의 이유이자 꿈이다. 지소연은 5년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의 3위를 이끌었다. 첫 성인월드컵 무대에서, 첫승, 첫 16강의 꿈에 도전한다. 20일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만난 지소연은 언제나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2003년 월드컵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 보여드리겠다. 말로만 16강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며 결연한 각오를 밝혔다. 엄마는 "소연이가 골 욕심을 대놓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늘 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표팀 자신의 포지션에선 골을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소연이가 골 욕심을 부렸으면 좋겠다. 가능한 많은 골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별도, 국경도, 편견도 뛰어넘은 지소연의 평발이 이끌 또 한번의 기적을 꿈꾼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