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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신의 '권혁 사용법', 이미 5개월전에 만들어졌다

이제껏 한국 프로야구에는 가장 '쓸데없는' 두 가지 걱정이 있었다. 하나는 '삼성 라이온즈 성적 걱정'. 다른 하나는 '김태균 타격 걱정'이다. 초반에 어떤 위기를 맞이하든지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느새 시즌 막판이 되면 삼성은 리그 최강자의 반열에 올라있고, 김태균도 기본적으로 타율 3할 이상은 찍는다. 삼성과 김태균을 걱정하는 건 정말 하릴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야구판의 '쓸데없는 걱정' 시리즈에 또 한가지 레퍼토리가 추가되야 할 듯 하다. 바로 '권 혁 과부하 걱정'이다. 시즌 초반 한화 이글스의 돌풍을 이끄는 필승투수 권 혁이 너무 자주 경기에 나와 많은 공을 던지는 게 '혹사'가 아니냐는 우려. 정작 팀 내부에서는 정확한 계산에 따라 투수를 운용하는 데 외부에서 오히려 더 난리다. 이런 논란을 대하는 김성근 감독(73)이나 권 혁 본인은 오히려 느긋하다. 김 감독은 "밖에서 잘 모르고 하는 얘기에 신경쓰지 않는다"며 여유있게 웃고 있다.

이런 여유는 확실한 신념과 치밀한 계획에서 나온다. 사실 권 혁의 이같은 운용법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김 감독은 '권 혁 사용법'을 이미 5개월 전부터 구상해놓은 상태였다. 5개월 전이라고 하면 스프링캠프보다 더 이전이다. 좀 더 정확한 시점을 밝힐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11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 FA 3인방의 합동 입단식 때부터 이미 김 감독은 권 혁을 어떤 식으로 운용해야 팀이 강해질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김 감독은 권 혁에 대해 이런 말을 했었다. "중간에서 쓸 지 마무리로 쓸 지 고민 중이다. 만약 마무리를 하게 된다면 구종 하나 정도를 추가해야 하지 않나싶다." 단순 명료한 이야기다. 필승계투와 마무리. 두 가지 보직에 관한 고민. 그걸 가르는 변수로서의 '구종 추가'. 당시 기자회견에 있던 취재진은 이 팩트를 그대로 전했다.

그런데 이 발언의 행간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어있었다. 입단 기자회견 후 열흘 뒤. 김 감독은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당시 발언의 '진짜 의미'<본지 12월22일자 보도>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구종 추가'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실제로 투수가 새 구종을 비시즌에 금세 추가해서 다음 시즌에 써먹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김 감독이 말한 '구종 추가'는 결국 '투구 패턴의 다양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누구도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데, 구종 추가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과연 권 혁이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투수로 클 것인지,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 팀의 뒷문이 어떻게 강해질 수 있는 지가 더 중요하다." 권 혁을 어떻게 활용하는 지에 따라 불펜의 힘이 달라지고, 이게 경기 후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점을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이다.

특히 김 감독은 구체적으로 권 혁의 사용법까지 예고했었다. 김 감독은 "구종을 하나 더 만들면(=투구 패턴을 다양화하면) 권 혁이 1~2이닝 정도 더 버텨낼 힘이 생긴다. 그렇게 된다면 중간에서 좀 더 길게 던지게 해도 되지 않나 싶다. 게다가 우리 팀에는 1이닝 정도 확실하게 막아줄 윤규진이라는 투수도 있다."

이미 5개월 전부터 김 감독은 권 혁의 운용법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두고 있던 셈이다. 애초의 베스트 플랜은 권 혁이 경기 후반을 책임진 뒤에 윤규진을 1이닝 마무리로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윤규진이 가벼운 어깨 통증으로 빠져있기 때문에 권 혁이 그대로 경기를 끝내는 역할까지 하게 된 것이다. '윤규진 부상'이라는 변수가 생겼지만, 권 혁을 준비시켜 놓았기 때문에 한화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처럼 김 감독은 이미 5개월전부터 권 혁을 어떤 식으로 쓸 지에 대한 구상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래서 1월 고치-2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기간에 권 혁을 집중 조련했다. 투구 폼도 조정했고, 무엇보다 많은 투구량을 소화하도록 했다. 캠프에서 공을 많이 던져야 시즌을 힘있게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권 혁은 캠프 기간 중 단 한 번도 아파서 쉰 적이 없다. 묵묵히 주어진 훈련량을 다 소화해냈다. 그렇게 쌓아온 훈련의 결실이 이제 겨우 조금 드러났을 뿐이다. 이런 권 혁의 운용법에 대해 '혹사'라거나 '옛 방식'이라고 걱정하는 건 그야말로 난센스이자 쓸데없는 일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