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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대전, 그 속에서 빛나는 박주원

전력이 떨어지는 팀에서 가장 바쁜 포지션은 어딜까. 정답은 골키퍼다.

하위권팀의 골키퍼는 상대의 무수한 슈팅과 맞서야 한다. 필드 플레이어 못지 않게 체력 소모가 크다. 올 시즌 대전 시티즌이 딱 그렇다. 개막 후 7경기 연속 무승(1무6패)의 늪에 빠진 대전은 승점 자판기로 전락했다. 떨어지는 전력 탓에 공격은 가뭄에 콩나듯 하고, 대신 수비 하느라 바쁘다. 쉴새 없이 몸을 날리는 최하위팀 대전의 '최후의 보루' 박주원(25)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주원은 올 시즌 대전 수비의 희망이다. 시즌 초반 부상자 속출로 부실한 수비 속 원맨쇼를 펼쳤던 맨유의 다비드 데헤아가 연상될 정도다. 오승훈에 밀려 벤치에 앉아있던 박주원은 울산과의 5라운드부터 주전 수문장으로 자리잡았다. K리그 클래식 데뷔전이었던 울산전에서 엄청난 선방쇼로 팀에 첫 승점을 안긴 박주원은 출전한 3경기에서 단 4실점만 허용하는 짠물수비를 펼치고 있다. 그 전까지 4경기에서 12실점을 내준 것과 비교하면 커다란 변화다. 박주원은 "사실 울산, 서울, 포항과의 3연전을 치르면서 엄청 힘들었다. 선수생활하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 바빠도 기분은 좋았다"고 웃은 뒤 "팀이 연패에 허덕이고 있는 동안 나마저 휘말리면 안될 것 같아서 정신적인 준비를 단단히 하고 경기에 나섰다. 내가 잘해야 다른 필드플레이어들이 더 의욕이 생길 것 같아 열심히 한 것이 최근 좋은 모습을 보이는 이유 같다"고 했다.

박주원의 축구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성장을 기다렸다. 어렸을때부터 골키퍼를 맡았지만 중학교 시절 성장이 더뎠다. 골키퍼에게 작은 키는 치명적이다. 결국 중2 때 축구를 포기해야 했다. 박주원은 "쉬는 동안 갑자기 키도 크고 몸에 힘도 붙더라. 공부도 잘 안되고 해서 중학교 감독님을 찾아가 고등학교 진학을 부탁드렸다"고 했다. 안동고에 진학한 박주원은 처음에는 오랜 휴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감독의 신뢰 속에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홍익대에서 괜찮은 골키퍼로 평가받은 박주원은 2013년 드래프트 1순위로 대전 유니폼을 입었다. 이때부터 주전을 향한 기다림이 시작됐다. 박주원은 아쉽게도 한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팀은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박주원은 그 사이 프로에서 성공하기 위한 내공을 쌓았다. 2014년 챌린지에서 조금씩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김선규의 부진을 틈타 경기에 나선 박주원은 16경기에서 단 12실점을 하는 좋은 기록으로 팀의 차세대 골키퍼로 평가받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오승훈이 영입되며 넘버2가 됐지만, 성실히 준비하며 조금씩 빛을 내고 있다. 박주원은 "사실 골키퍼가 한 번 주전이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 않는 자리다. 넘버2로 정해지면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조급하지는 않았다. 축구가 좋았고, 언젠가 기회가 올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늘 재밌게 기다렸던 것 같다"고 했다.

박주원은 "상대했던 팀들이 모두 국가대표가 즐비한 스타군단이었다. 많은 골을 먹어도 욕을 먹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잃을 게 없는만큼 더 뜨겁게 경기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경기를 할 것이다"고 다짐했다. 경기 운영과 킥 능력을 더 향상시키고 싶다는 박주원, 그는 잃을 게 없어서 그래서 더 무섭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