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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슈틸리케 200일의 기록,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일 드라마'는 현재까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23일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은지 200일째가 되는 날이다. 지난해 9월 5일 지휘봉을 잡은 그는 한국 축구에 7년 만의 외국인 사령탑 시대를 열었다. 부임 초기에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200일간 '우려' 꼬리표를 떼고 그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된 선수 선발, 숨은 진주를 발굴해내는 능력, 과감한 결단력, 한국 축구를 위한 쓴소리 등 슈틸리케 감독이 보여준 축구 세계는 명확했다.

첫 시험대도 무사히 통과했다. 대표팀을 맡은 지 3개월만에 출전한 2015년 호주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한국 연착륙에 성공했다. 아시안컵 전·후로 한국 축구를 향한 팬들의 시선이 바뀐 것도 큰 성과다. 아슬아슬한 승부에도 무실점 승리를 따내는 슈틸리케의 '실속형 축구'에 '늪축구', '다산 슈틸리케' 등 수많은 별명과 패러디물들이 양산됐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그러나 막상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 기자회견 및 행사 이외에 슈틸리케 감독이 취재진과 만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보니 슈틸리케 감독의 성격 취미 한국 생활, 대표팀을 지휘하며 생긴 에피소드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200일간 공개되지 않은 기록, 그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슈틸리케호와 슈틸리케 감독이 품고 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스포츠조선이 공개한다.

#1. 슈틸리케의 두둑한 배짱

호주아시안컵에서 슈틸리케호는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앞두고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주축 선수들의 줄감기로 비상이 걸렸다. 오만과의 1차전에서 부상으로 낙마한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당시 볼턴)을 포함해 심한 감기 몸살에 걸린 손흥민(레버쿠젠) 구자철(마인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김창수(가시와 레이솔) 등 5명의 쿠웨이트전 결장이 확정됐다. 쿠웨이트와의 경기 당일, 대표팀 분위기는 '초상집'이었다. 코칭스태프를 비롯해 선수단 몸관리를 책임지는 지원스태프는 가시방석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국제대회에서 5명을 한 번에 '논 플레이어(Non-Player)'로 등록하는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태프들이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선수들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만 여유가 넘쳤다. 평소대로 아침을 즐겼다. 이 때 열이 40도까지 오르는 등 감기 증상이 가장 심해 밤새 주치의의 관리를 받던 손흥민이 부축을 받으며 식당으로 걸어 왔다. 대표팀과 스태프 모두의 시선이 손흥민에게 쏠린 순간, 슈틸리케 감독이 입을 열었다. "헤이! 쏘니(손흥민의 애칭), 유 캔 플레이 투데이." 걸어다닐 수 있으니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농담이었다. 손흥민은 황당하다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었고,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웃음을 지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말 한마디에 가라앉았던 대표팀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이를 본 장외룡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이 혀를 내둘렀다. 장 부위원장은 "내가 보기에 슈틸리케 감독은 배짱이 대단하다. 중요한 국제대회에서 5명이 한 번에 못뛰는 상황인데 배짱이 없이는 저런 행동이 나오기 쉽지 않다"고 했다. 다행히 한국은 2차전에서 졸전을 펼쳤지만 쿠웨이트에 1대0으로 승리를 따냈다. 자칫, 쿠웨이트전에 패하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면 세상에 공개되지 못할 비화로 남을 뻔한 이야기다.

#2. 슈틸리케만의 선수 점검 방식

지난해 10월, 슈틸리케 감독은 처음으로 안산-강원의 경기가 열린 K리그 챌린지 현장을 찾았다. 대표팀 감독이 2부리그를 찾은 것도 큰 관심이었지만, 그의 선수 파악 방식이 더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한 축구협회의 한 직원이 한 선수를 지목해 "대표팀에서 뛰었던 미드필더 자원"이라고 소개했다. 대뜸 슈틸리케 감독이 말을 끊었다. "나에게 선수에 대해 어떤 얘기도 하지 마라. 선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내가 편견을 가지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름값이 아닌 직접 실력을 확인한 뒤 선수를 선발하겠다는 약속대로 그는 오직 플레이만 보고 선수를 평가했다. U리그(대학축구)가 열리는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슈틸리케 감독이 협회에 요청하는 자료는 오직 하나, 영문으로 나온 선수 명단이다. 협회 관계자는 "감독님은 경기장에서 대화를 아예 나누지 않는다. 선수 명단과 그라운드만 주시한다. 경기 중 선수에 대한 얘기는 금기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데렐라' 이정협(상주)도 슈틸리케 감독 및 코칭스태프가 다섯 차례나 직접 경기장을 찾아 발굴해낸 '원석'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3월에도 네 차례나 K리그 현장을 찾았다. 이번에는 이재성(전북) 김은선(수원) 등 K리그 2명을 새롭게 발탁했다. 반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해외파의 경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수 컨디션을 체크한다. 인맥과 분석 프로그램이 슈티리케 감독의 지원군이다. 이같은 비밀(?)은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의 경험담을 통해 알려졌다. 대표팀 관계자는 "정호가 놀라면서 얘기를 했다. '슈틸리케 감독님이 우리팀 감독님하고 직접 통화를 하시는 것 같다. 마르크스 바인지를 감독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슈틸리케 감독님이 알고 있더라'라며 말했다"고 설명했다. 분데스리가 소속 선수들의 경우 인맥을 이용해 소속팀 코칭스태프에게 직접 컨디션을 체크한다고 한다. 다른 해외파 선수들은 분석 사이트의 자료를 활용한단다. 이 관계자는 "슈틸리케 감독님이 해외파를 점검하러 해외에 나가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경기 수치부터 경기 영상까지 모두 볼 수 있는 분석 사이트를 이용하신다"면서 "당분간도 해외 출장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3. 웃음기 제로, 슈틸리케는 독설가?

슈틸리케 감독은 평소 말이 없다. 농담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독설가'라는 게 협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아시안컵 기간 중 있던 에피소드다. 1월 말, 국내 한 정당의 국회의원이 당대표 경선 간담회에서 "당에는 슈틸리케 감독처럼 용인술이 뛰어난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다같이 웃자며 말을 전한 협회 직원은 당혹스러워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반응은 한마디였다. "난 정치에 관심 없다."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된 '다산 슈틸리케' 패러디 물을 본 슈틸리케 감독의 반응도 무미건조했단다. 그러나 필요할 경우, 그는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7년간 카타르 클럽을 지도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 4강전을 앞두고 카타르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투자를 많이 하는 카타르축구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슈틸리케 감독이 대답은 이랬단다. "국가가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교육 받을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데 돈만 많을 뿐, 관리가 안된다. 어린 선수들은 영양관리와 교육이 중요한데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하고 교육도 잘 받지 않는다. 끈기도 없다." 한 번은 협회 관계자가 유소년 축구 선수를 둔 부모들에게 해줄 조언을 슈틸리케 감독에게 요청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답은 "난 18세에 독일청소년 대표를 할 때도 축구로 평생 먹고 살지 몰랐다.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결정할 연령대가 사람마다 다르다. 어렸을때 너무 축구만 시키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야한다"였다. 립서비스를 기대하기는 힘든 스타일이다.

#4. 슈틸리케는 한국 체질

3주간 스페인 휴가를 다녀온 슈틸리케 감독은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스페인에서 감기 몸살로 제대로 쉬지를 못했단다. 그러나 지난 4일 귀국 후 그는 원기를 회복했다. 얼굴빛도 금세 좋아졌다. 주변에서 '한국 체질'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의 식생활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대표팀 관계자는 "감독님이 된장찌개과 미역국을 잘 드신다. 보통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다 같이 먹는데 개인 것처럼 옆에 놓고 혼자 다 드신다. 된장 한 뚝배기를 다 먹고 리필까지 한다"고 말했다. 한국 지휘봉을 잡은 이후 처음 접한 '한식 초보'지만 입맛은 '토종 한국인'에 뒤지지 않는다. 이 관계자는 "포크 대신 젓가락을 사용한다. 아시안컵 기간 동안에도 대표팀 선수들이 먹는 식단을 다 같이 먹었다. 다른 외국인 감독님은 식단을 따로 챙겼는데, 슈틸리케 감독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음악 미팅'은 색다른 모습이다. 워낙 음악을 즐겨 들어 개인 컴퓨터에 저장된 음원 자료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지원스태프가 슈틸리케 감독의 방을 찾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도 '음악 선곡'이다. 노래를 함께 들으며 대화를 시작한다. 본 조비와 비틀즈의 노래를 좋아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7일 K리그 클래식 개막전이 열린 전주를 찾았다. 경기전 한 식당에 들린 슈틸리케 감독은 노래가 흘러나오자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고 한다. 식당에서 나온 노래는 비틀즈의 '헤이, 쥬드'였다.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