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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송신영의 마지막 도전 '난 '땜빵' 투수다'[이명노의 人터뷰]

2001년 4월 19일 수원구장. 현대 유니콘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초반부터 선발투수가 무너지자 김시진 투수코치가 다가왔다. 처음이었다. "신발끈 묶어라."

그때부터였다. 넥센 히어로즈 투수 송신영(38)은 자신의 선수 생활을 "'땜빵 인생'이었다"고 돌아봤다. 프로 데뷔전이 그의 야구 인생을 암시한 게 아니었을까. 송신영은 동기인 선발 박장희가 무너지자, 갑작스레 몸을 풀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렇게 '땜빵'으로 나간 그는 5⅓이닝 1실점으로 9회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중인 그와 오랜 시간 마주 앉을 기회가 생겼다. 송신영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 해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근데 선발진이 무너지면서 1군에 올라왔다. 그런데 12일간 등판 얘기는 듣지도 못했다. 몸도 안 풀었다. 그런데 그날 김시진 코치님의 몸풀라는 얘기에 '이 기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군 등판이 처음이었던 신인급 투수는 이를 악물었다.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른 이에게는 선발이 무너진, 그렇고 그런 경기였겠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포수 박경완을 바라봤다. '우리나라 최고 포수인데 저 사람 사인만 믿고 던지자'고 마음 먹었다.

경기가 끝나고, 김재박 감독은 "저 친구, 선발투수로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그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렸다. 스스로 '땜빵용'이었다고 말한 그의 프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출발선, 88번째 지명과 계약금 없는 연습생

그는 현대 입단과 동시에 시련을 겪었다. 그냥 곧바로 야구를 관두려고 했다. 고려대 재학 시절 부상으로 인해 4년간 보여준 게 없었다. 1999년 2차 11라운드 전체 88순위로 거의 마지막에 지명됐다. 그의 뒤에는 8명밖에 없었다.

그렇게 프로 유니폼을 입었지만, 그의 처지는 계약금 없는 '신고선수'였다. 구단 관계자로부터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아라"는 얘기를 들었다. 굴욕적이었다. 자존심이 센 그는 곧바로 야구를 관두려고 마음 먹었다. 최저연봉이 2000만원도 안 되던 시절, 그냥 나가서 다른 일을 하는 게 나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자"는 부모님의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송신영의 프로 생활이 시작됐고, 2년만에 1군 무대를 밟으며 짓밟힌 자존심을 세웠다.

▶레이스, 특출나지 않았지만 꾸준했던 '만능' 투수

송신영은 '만능' 투수였다. 선발을 하라 하면 선발로, 필승조에 배치하면 필승조로, 마무리로 뛰라 하면 마무리로 나갔다. 프로 통산 성적은 14시즌 동안 675경기서 53승 46패 47세이브 77홀드 평균자책점 4.17. 기록에서 나타나듯, 안 해본 보직이 없다. 게다가 큰 부상 없이 매년 '개근'했다.

그는 "지금껏 내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며 웃었다. 그리고 올 시즌, 그는 다시 선발등판을 준비하고 있다. 공석인 넥센의 5선발 후보군에 이름을 올려 몸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다.

염경엽 감독은 그에게 "포기하지 않고 하면, 윤성환처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속구 없이도 다양한 변화구와 뛰어난 컨트롤로 상대를 제압하는 선발투수. 그중에서도 대표격인 4년 80억원의 몸값을 기록한 삼성 윤성환을 언급한 것이다.

물론 송신영은 과거부터 그런 투수였다. 배짱에서 우러나오는 칼날 같은 제구력과 뛰어난 손기술에서 나오는 팔색조 변화구.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해 "난 특출나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조금씩 미달이었다. 그래서 보직이 계속 바뀐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8년 5월 17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 그의 마지막 선발등판이었다. 당시 기록은 2⅔이닝 5실점. 그 해 역시 중간에서 던지다가 선발이 없어 '임시'로 나갔다. 이후 7년이나 지나 선발로 다시 나갈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여러 보직 중에 임시로 마무리를 할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150㎞짜리 공을 던지는 마무리투수가 되고 싶다. 우리 (조)상우만큼 되면, 한 획을 긋지 않았을까"라며 미소지었다.

▶결승선, 두려움과 도전 "난 '땜빵용' 투수"

올해로 프로 17년차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이지만, 그는 "지난해 공에 대해 두려움이 생겼었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최고구속이 147㎞까지 나왔지만, 결과는 생각과 달랐다. 예전이었으면 몸쪽 공에 부러졌을 배트는 너무나 단단해졌고, 외야에 뜬공으로 잡힐 타구가 담장을 넘어갔다. 나날이 발전한 장비는 착실하게 몸을 만든 베테랑 투수의 생각을 송두리째 흔들어놨다.

2013년, 그는 61경기에 나서 피홈런을 단 한 개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1년만에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함께 최고참 반열에 접어든 다른 팀 동료들도 "마운드에 서기가 무섭다"는 얘길 했다. "됐다" 싶었는데 안 되니, 자신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송신영은 다시 힘을 내고 있다. "올해 해보면, 끝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5선발로 등판하지 못하더라도 중간에서 25경기만 나서면 700경기다. 스스로를 '땜빵'이라고 생각했던 투수는 "여기까지 올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어렸을 땐 마흔 살까지 야구하는 건 상상도 못했다"며 하늘을 바라봤다.

송신영은 긴 인터뷰를 마치면서 "올 시즌부터 144경기를 하니, 우리 팀 마운드에도 부침이 있을 것이다. 내가 '땜빵'을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뷔 때부터 여전히 자신을 '땜빵용' 투수라고 생각하는 그의 마지막 말에도 깊은 울림이 있었다.

오키나와=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