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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 오재영, 넥센 '반전 드라마' 이끈 QS 역투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은 경기 전 "오늘은 굉장히 힘든 경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보여준 패가 너무 약했다. 상대 에이스 카드에 맞서 나온 선발투수는 5승을 올리는데 그친 투수. 게다가 부진으로 풀타임 선발로 활약하지 못한 투수였다.

넥센과 LG 트윈스의 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린 30일 잠실구장. 넥센 선발투수 오재영은 우려를 비웃듯, 호투를 거듭했다. 왼손투수의 이점을 살린 투구가 효과적이었다.

사실 넥센은 밴헤켄과 소사, 원투펀치 뒤가 약했다. 이 부분은 분명한 아킬레스건이었다. 염 감독이 고심 끝에 포스트시즌 마운드를 '3선발 체제'로 운영한 것도 이런 부분이 고려됐다.

3선발 오재영은 너무나 약해 보였다. 염 감독은 "내가 상상한 첫 번째 시나리오는 지나갔다. 두 번째 시나리오로 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3차전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원투펀치를 내세운 1,2차전을 모두 잡자는 게 당초 목표였다. 오재영은 크게 기대하지 않은 카드였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류현진도 부럽지 않은 호투를 펼쳤다. 2차전까지 기세를 올린 LG 타선을 단 1실점으로 막았다. 넥센의 어그러진 시나리오를 다시 원래대로 돌이킨 일등공신이 됐다. 오재영은 6이닝 동안 91개의 공을 던지면서 3안타 2볼넷만을 허용하고, 삼진 2개를 잡으며 1실점했다. 선발투수의 역투에 타선도 힘을 냈다. 2회초 강정호의 솔로홈런, 그리고 5회 집중 5안타로 4득점, 5-0 리드를 만들어줬다.

오재영의 결정구는 슬라이더다. 왼손투수인 오재영의 주무기는 좌타자에게 특화돼 있다. 왼손타자 몸쪽으로 들어오다 휘어 나가는 각도가 좋다. 게다가 LG 타자들과는 상대성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타선에 좌타자가 많은데다, 대부분의 LG 타자들은 정상적인 인앤아웃 스윙을 한다. 오재영의 슬라이더와는 완전히 '상극'이다. 배트 중심에 맞히기 힘들다.

오재영은 자신의 슬라이더를 바탕으로 힘 있는 정면승부를 펼쳤다. 초반에는 직구를 결정구로 썼다. 우타자 상대 위닝샷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직구에 힘이 있었다. 몸쪽으로 슬라이더를 넣은 뒤, 바깥쪽으로 강력한 직구를 던지는 단순한 패턴으로도 손쉽게 LG 타자들을 요리할 수 있었다. 91개의 공 중 51개가 직구, 최고 구속은 143㎞였다.

오재영은 2회말 2사 후 스나이더와 오지환에게 연속 안타를 맞았지만, 최경철을 유격수 앞 땅볼로 잡아내며 첫 위기를 넘겼다. 1회와 3회, 4회는 삼자범퇴였다. 5회 실점이 있었지만, 대량 실점의 위기를 막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칫 대량실점할 수 있는 1사 만루 상황에서 정성훈에게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1실점만 허용했다.

당초 염경엽 감독은 오재영이 5이닝만 막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5이닝 3실점' 정도가 염 감독이 바란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오재영은 이를 초과 달성했다.

5회까지 투구수는 79개. 오재영은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1사 후 볼넷을 내주긴 했지만, 이진영과 스나이더를 연속해서 외야 플라이로 잡아내며 자신의 임무를 200% 완수했다. 오재영은 충분히 훌륭한 선발카드였다.

오재영은 신인왕을 탔던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승리투수가 된 경험이 있다.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던 2004년 10월 27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 선발등판해 5⅔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한 뒤 10년만에 포스트시즌 승리를 따냈다.

경기 후 오재영은 "옛날 얘기지만, 그때도 2승2패 상황에서 나가 승리투수가 됐다. 오늘도 1승1패로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 이를 악물고 던졌다"며 "한 번 나가는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냈다. 솔직히 올해 많이 아쉬웠는데 이 한 경기로 위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LG 팬들의 함성은 큰 압박이 되지 않았을까. 오재영은 "경기 중엔 못 들었다. 마운드를 내려온 뒤에 들리더라. 그런 건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며 "야수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호수비 덕분에 위기를 넘겨 좋은 결과가 난 것 같다"고 했다.

오재영은 2004년처럼 우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저희 팀이 약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 오히려 다른 팀들이 우리를 경계한다고 생각하니까 우승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잠실=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