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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통장 대신 가상계좌로 2조원대 불법자금 거래

은행 가상계좌를 이용해 2조원대 불법 자금거래를 돕고 수수료를 챙긴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청 사이버범죄대응과는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1만2천여개의 입금전용 가상계좌를 발급받아 인터넷 도박사이트 등에 제공하고 15억원의 이체 수수료를 챙긴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으로 이모(50)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1일 밝혔다.
가상계좌는 은행 계좌에 딸려 있는 가상의 계좌로, 입금자의 정보가 포함돼 있어 아파트 관리비나 각종 공과금 납부 등에 이용된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가상계좌 포인트 적립사업을 하면서 은행에서 입금전용 가상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을 입금받아 다시 출금까지 하는 '전자자금이체업'을 하려면 금융위원회에 사업을 등록해야 한다.
이들은 도박사이트 이용자 등으로부터 입금전용 가상계좌를 통해 돈을 받아 수수료를 제하고 모(母) 계좌를 통해 사이트에 다시 돈을 입금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가상계좌는 가명으로 사용되며 수시로 번호를 바꿀 수 있어 모 계좌 소유자를 찾지 못하면 송금자를 알 수 없어 범죄에 악용됐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렇게 도박사이트나 보이스 피싱 범죄자들은 대포통장을 쓰지 않고 가상계좌를 통해 돈을 챙길 수 있었다.
4월부터 최근까지 이들이 만든 가상계좌는 95만개에 달한다. 이 중 1만2천여개가 범죄에 악용돼 2조원 이상의 불법 자금을 유통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만든 가상계좌를 이용해 저질러진 인터넷도박, 불법 경정·경륜, 인터넷 물품 사기, 전화사기 등 범죄는 260여건이다.
경찰은 이들에게 가상계좌를 발급해 준 시중 은행 3곳이 계좌가 범죄에 악용되는 줄 알면서도 묵인해 줬는지 조사하고 있다.
이씨 일당이 챙긴 수수료 15억원 중 가상계좌를 열어준 은행에 지급된 수수료는 2억원 정도로 경찰은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가상계좌를 이용한 불법자금 거래가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판매점과 유통점 등을 점조직으로 운영하며 '사업'을 확대하던 중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대포통장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이를 피하려고 가상계좌가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며 "가상계좌가 입금의 편의를 높이자는 당초 목적과 달리 금융실명제 취지에 맞지 않게 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과 대책을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banana@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