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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있어야 편성? 설 자리 잃어가는 드라마 작가들

원작물의 홍수, 창작의 영역을 위협한다. 작가의 창작 영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최근 안방극장에 '원작 있는 드라마'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내 웹툰과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거나 해외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들이 편성표의 중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7일 첫 방송 이후 단숨에 화제의 드라마로 떠오른 tvN '미생'은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사회 초년병의 눈으로 본 직장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크게 호평받고 있다. 원작 '미생'은 '샐러리맨의 교과서'라 불리며 포털사이트 연재 당시 조회수 1억 건을 넘긴 히트작이다. 앞서 웹드라마 '미생' 프리퀄도 제작돼 화제를 모았다. 김원석 감독과 정윤정 작가는 뛰어난 세공력으로 드라마 '미생'을 완성했지만,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와 높은 인지도에 큰 빚을 졌다.

오는 11월 23일 첫 방송을 앞둔 OCN '닥터 프로스트'도 지난 2011년 연재돼 독자만화대상 온라인만화상을 수상한 이종범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현빈이 안방극장 복귀작으로 선택한 SBS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의 원작은 이충호 작가의 웹툰. 대학생들의 고민과 사랑을 담은 웹툰 '치즈인더트랩'도 현재 드라마화 작업 중이다.

tvN '라이어 게임'과 KBS2 '내일도 칸타빌레'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한국으로 오면서 '내일도 칸타빌레'로 이름을 바꿨다. 이들 두 작품은 일본에서 만화로 출간된 이후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크게 성공했다. 독자와 시청자들로부터 두 번이나 인정받은 인기 콘텐츠인 셈이다.

외국드라마를 한국적 정서에 맞게 리메이크한 드라마도 많다. 얼마 전 종영한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와 상반기 방영된 tvN '마녀의 연애'는 대만 드라마 원작. 지난해 방송된 KBS2 '직장의 신'과 SBS '수상한 가정부', MBC '여왕의 교실'은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오는 27일 tvN에서 1년여 만에 선보이는 일일드라마 '가족의 비밀'은 87개국에 수출된 칠레 드라마의 리메이크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방송가에선 검증된 원작이 있거나 막장 요소가 있는 드라마만 편성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원작은 막장만큼이나 실패 확률을 낮춰주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통한다.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드라마 스토리 개발과 투자는 등한시하고 원작을 찾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드라마 제작의 중요 역할을 담당해야 할 작가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작자로서 자신만의 독창적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순수 창작물 발굴을 전제로 하던 극본 공모도 아예 원작을 지정해놓고 실시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제작사 에이스토리는 네 번째 극본 공모를 하면서 웹툰 2편을 원작으로 제시했다. 나아가 작가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할 단막극도 안심할 수 없다. MBC 드라마 페스티벌의 경우, 본격적으로 시리즈를 시작한 지난 19일에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2부작 '포틴'을 편성했다. 신인작가 발굴을 목표로 한 드라마 페스티벌의 기획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MBC 관계자는 "지금은 퇴사한 연출자 이윤정 PD가 지난 해 만든 드라마인데 당시 편성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올해 드라마 페스티벌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이제 작가들은 드라마 극본을 집필할 때 참신한 에피소드와 캐릭터 개발보다는 원작의 각색에 더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작가들이 각색가로 '전업 아닌 전업'을 해야 할지 모른다"며 안타까워 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