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준PO] 느림보 1번타자, LG 정성훈의 새삼 돋보이는 노련미

팀 공격의 선봉을 맡게 되는 '1번 타자'. 흔히 우리나라에서 '톱타자'라고도 불리지만, 정확한 명칭은 '리드오프'다.

공격의 문을 열어야 하는 리드오프가 되려면 몇 가지 특징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 핵심은 '빠른 발'이다. 리드오프가 갖춰야 할 출루율과 득점 확률을 모두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발이 빠른 타자라면 내야 땅볼을 치고서도 1루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단타성 타구를 날리고도 2루까지 가거나, 또 후속타가 짧았을 때 한 베이스 더 진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혹은 출루한 뒤에 단독 도루를 하는 그림도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발이 빠른 타자가 리드오프를 맡으면 팀의 공격 옵션은 크게 늘어나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에 먼저 2승을 거둔 LG 트윈스의 리드오프는 발이 느리다. 이른바 '신개념 리드오프'라고 할 수 있다. LG 양상문 감독의 선택은 베테랑 정성훈이다. 정성훈은 전형적인 리드오프형 타자가 아니다. 발이 느리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데뷔 후 매 시즌 도루가 10개 안팎에 그쳤다. 커리어 최다 도루는 KIA 타이거즈 소속이던 2002년의 16개.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프로 경력의 대부분을 중심타선에서 치러냈다.

하지만 양 감독은 팀의 지휘봉을 잡은 뒤 정성훈을 전격적으로 리드오프 자리에 넣었다. 비록 발은 느리지만, 정성훈의 또 다른 장점에 주목한 것이다. 노련미를 앞세운 출루본능이다. 프로 16년차 정성훈은 어떻게 투수를 공략해야 하는 지에 관한 노하우가 풍부하다. 그리고 이런 노련미는 정규시즌 후반 LG의 대약진에 이어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도 큰 효과를 내고 있다.

정성훈의 활약은 1, 2차전에서 계속 이어졌다. 1차전에서는 1회초 NC 선발 이재학을 상대로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날리며 공격의 선봉장다운 모습을 보였다. 이재학은 첫 상대인 정성훈에게 2루타를 맞은 뒤 급격히 무너졌고, 결국 1회도 못 버틴 채 강판됐다. 정성훈은 이날 5타수 1안타 1득점에 그쳤지만, 이때의 2루타로 제 몫은 끝냈다.

2차전에서도 정성훈은 빛났다. 또 1회초 첫 타석부터 터트렸다. NC 외국인 선발 에릭을 상대로 좌월 솔로홈런을 때려냈다. 볼카운트가 1B2S로 불리하게 몰린 상황이었지만, 정성훈의 스윙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에릭이 던진 시속 146㎞의 바깥쪽 직구를 기다렸다는 듯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겨버렸다. 이날의 결승타였다. 2차전 정성훈의 최종 기록은 5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

포스트시즌에서 1회의 압박감은 엄청나다. 양 팀이 똑같다. 긴장감이 덕아웃을 물들인다. 그래서 리드오프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하다. 단순히 공격의 첫 물꼬를 튼다는 의미를 넘어서 경기의 분위기 자체를 잡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정성훈이 바로 그런 힘을 보여줬다.

상대적으로 NC 리드오프 박민우와는 대비된 활약이다. 박민우야말로 전형적인 리드오프다. 올해 도루가 무려 50개나 됐다. 스피드로는 정성훈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박민우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경험이 너무 없었다. 처음 맞는 포스트시즌 무대의 압박감에 흔들려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새삼 정성훈이 얼마나 노련하고 경험많은 타자인지가 박민우의 부진을 보면 느껴진다.

창원=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