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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맨스' 다룬 '마마', 여자들에게도 우정이 있다

"이곳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팠지만 또 가장 행복했던 곳이야. 친구 따위 가져갈 겨를 없이 앞만 보며 살던 내가 진짜 친구 서지은 널 만난 곳이기도 하니까. 널 통해서 내 인생에 없었던 행복과 기쁨을 알았어. 너랑 같이 보낸 시간이 난 참 좋았어." (20회 한승희 대사)

"난 아직 널 더 미워하고, 더 원망하고, 더 괴롭혀야 하는데. 난 아직 널 용서 못했는데. 난 아직 분이 안 풀렸는데. 그런데 죽어버리겠다고? 누구 맘대로? 넌 왜 이렇게 모든 게 네 멋대로야. 죽지 마. 절대 안 돼. 내 허락 없이 넌 절대 못 죽어." (20회 서지은 대사)

이토록 절절하게 여자들의 우정을 그린 드라마는 없었다. 사전 지식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대사만 보면, 안타까운 이별을 앞둔 연인의 대화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남자들에게 '브로맨스(Bromance)'가 있듯, 여자들에게도 '워맨스(Womance)'라 불리는 진한 우정이 있다. 19일 종영한 MBC 주말극 '마마'가 특별하게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 '여자를 위한, 여자에 의한, 여자의' 이야기로 보편적 공감대를 이뤘다는 데 있다. 특히 요즘처럼 여자 중심의 작품을 찾아보기도 어렵고 성공하기도 쉽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이룬 성과라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마마'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싱글맘 화가 한승희(송윤아)가 홀로 남겨질 아들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기 위해 옛 남자의 아내 서지은(문정희)과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를 그린다.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 두 여자가 서로 의지하고 신뢰하며 쌓아가는 우정은 숨겨진 비밀 때문에 위태로웠지만 그래서 더 절실했다. 결국엔 모든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고 안정된 관계들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우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지은은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파멸하거나 복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은은 남편보다 친구에 대한 배신감을 더 크게 느꼈다. 다소 아이러니한 이 감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 건, 두 여자의 관계가 애정에 가까울 정도로 밀착감 있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런 대사들이 있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 너 같은 여자랑 절대로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까 나도 여기까지 왔어. 보고 있으면 피곤하고 짜증나고 신경 쓰이고…."(한승희) "모른 척해. 모른 척하면 되잖아."(서지은) "그렇게 안 되니까 미쳐버리겠다고."(한승희)

묘한 상상력까지 불러일으키는 두 여자의 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그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기에 앞서 '체감'을 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그려낸 우정이 남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진 여자들의 우정은 친구 사이의 감정이라기보단 동지애와 연대의식에 가까웠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이 함께 연대해 체제에 대응하거나, 혹은 성(性)에 대한 솔직한 담론을 통해 당당한 주체로 성장해가는 이야기 정도에 머물렀다. 순수한 감정의 결정체로서 여자들의 우정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생각만큼 흔하지 않다.

심지어 지금도 여전히 드라마 속 여자들의 관계는 우정은커녕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다툼을 벌이는 연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왔다 장보리'의 장보리와 연민정처럼 선과 악의 대변자로 여자들이 갈등 관계에 놓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굳이 주인공이 여자여야만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기황후'처럼 여자가 원톱 주인공인 드라마도 남성화된 여자 캐릭터이거나 실상은 남성적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대다수다.

'마마'에서 승희와 지은의 우정에는 모성애가 한 축을 이룬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서 엄마라는 공통 분모를 제거한다 해도 그 우정은 별로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에 두 사람이 가까워진 이유가 엄마이기 때문이 아니듯, 두 사람이 끝까지 손을 놓지 않은 것도 엄마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친구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우정이라고 해서 특별한 이유가 필요할까. 친구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마마'는 엄마들의 모성애 드라마가 아닌 '여자 드라마'에 방점이 찍힌다.

'마마'에서 송윤아와 문정희의 열연도 빠뜨릴 수 없다. 두 여배우는 삶의 내공이 묻어나는 연기로 승희와 지은을 표현해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돌아온 송윤아는 깊이 있는 연기로 세간의 불편한 시선을 잠재웠다. 친구에 대한 애틋함과 절망감을 오가며 감정의 진폭이 컸던 문정희는 관록의 연기로 극 전개의 굴곡을 책임졌다.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은 단연 압권이다. '마마'가 여자 드라마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