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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문중' vs '명량' 제작사의 평행선 대립, 논란의 핵심은?

영화 '명량' 속 '비겁한 도망자'로 묘사된 배설 논란. 점입가경이다.

배설 후손인 경주 배씨 성산파가 구성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영화 '명량' 이 허위사실로 배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명량' 제작사 (주)빅스톤픽쳐스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입장을 정리 중에 있다. 이번 주 내에 가급적 공식입장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빠른 발표를 하지 못하고 신중을 기하고 있다. 우리들의 결정이 앞으로 수많은 창작자들과 역사가, 학계 그리고 앞으로의 관객들이 보게 될 새로운 역사물 등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리들의 행보가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빠른 시일 내에 공식입장을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배설 후손 측이 발끈했다. 21일 오전 비상대책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내 '비상대책위는 먼저 제작사측에 전화연락을 취해보려 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서 발표된 '명량' 제작사측의 발표 내용을 보고 또 다시 충격과 분노에 빠졌다. 제작사 측의 발표 내용은 피해자의 호소는 외면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는 괘변이자 비겁한 말이다. 또 여론몰이를 통한 편가르기로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위험한 생각이다. 제작사 빅스톤픽쳐스의 입장에 대해 후손들은 그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동안 보였던 입장에 대해 영화제작사는 아무런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책임회피성 입장만 피력했다. 나아가 민원 청원 이후 열흘가까이 되도록 영화제작사는 후손들이 주장하는 공식적인 사과와 조상의 명예회복 문제를 외면하면서 오만한 처사로 일관 했다'고 비난했다.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은 평행선. 논란의 핵심은 무엇일까.

▶영화 속 '허구' 어디까지 허용될까.

픽션과 논 픽션 물. 차이가 있다. 사실만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논 픽션물에는 상상력의 여지가 없다. 대표적으로 다큐멘터리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소설과 시나리오는 다르다. 픽션의 영역이다. 상상의 영역이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창작물. 문제는 그 범위다. 일정 수위를 넘는 순간 제한을 받는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단, 사회가 민주화될 수록 그 제한의 폭은 좁아진다. 연령 제한을 둘 지언정 아예 원천봉쇄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사상이나 가치 판단 문제에 있어서 국가적 제한의 영역은 줄어드는 추세다. 영상, 출판물에 대한 검열완화의 역사를 생각하면 간단히 이해된다.

다만, 최근 문제는 국가vs 개인의 충돌이 아니다. '배설 논란'처럼 개인 vs 개인의 이해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판단도, 조정도 어려운 부분이다. 이번 사건 처럼 역사물의 경우 '실명' 사용 여부는 민감한 이슈일 수 있다. 일단 '허구적 요소'가 있음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와 실존 인물의 실명 사용이란 이해 관계가 팽팽히 맞선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 주장과 '실명 사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여 명예가 훼손됐다'는 주장이 양립할 여지가 있다.

▶'표현의 자유' vs '실존 인물의 명예'

제작사는 '우리들의 결정이 앞으로 수많은 창작자들과 역사가, 학계 그리고 앞으로의 관객들이 보게 될 새로운 역사물 등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선례' 문제로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제작사 입장 발표에는 영화 상영 전 미리 전제한 '허구'의 적용 폭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면 자유로운 '표현'을 제한해 창작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하지만 배설 후손 측에서는 허위사실로 인해 '문중의 명예'가 명백히 훼손 됐다는 입장이다. 영화 속에서 배설은 한척 남은 거북선을 불태우고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후 도망치다 화살에 맞고 죽음을 맞이 한다. 사료에 따르면 이는 허구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거북선은 이미 모두 소실돼 없었다. 암살 기도 또한 기록에 없는 사실이다. 사료 속에서 배설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1597년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이순신의 허락 하에 진영을 이탈했다가 수배를 받는다. 이후 군법에 의거 참형당했지만 사후 무공을 인정받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됐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