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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영화평] 리얼리티의 완결판 '해무'보고 배 멀미 하다

예민한 기자임을 미리 밝혀둔다. 지난해 1월 개봉했던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3D로 관람하던 중 멀미 증세를 못 이기고 상영 중 극장을 나온 경험이 있다. 이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수 없이 봤건만, 멀미를 일으킨 작품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이 당시에는 그나마 '3D에 앞 줄에 앉아서 그랬을거야'하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넸던 터.

하지만 이번 두번째 멀미 증세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지난 6일 저녁 용산 CGV. '해무'의 시사회를 보던 중 심한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느꼈다. 이번에는 3D도 아니고, 심지어 뒷 좌석이었음에도 불구, '라이프 오브 파이' 때보다 증세가 더 심했다. 밀려드는 당혹감 속에 혼자 곰곰이 생각했다. '난 111분동안 대체 뭘 한거야?'

다소 과장스럽게 들릴 지 모르는 기자의 경험담. 하지만 그만큼 '해무'는 리얼하고 생생했다. 10여 년 전,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기를 주저케 했던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과 심성보 작가 콤비의 리얼리티가 이번에는 제작자와 감독으로 만났다. 그리곤 (기자에게) 리얼한 배 멀미를 선사(?)했다.

'해무'는 여섯 명의 선원이 삶의 터전인 어선 '전진호'를 지키기 위해 밀항자들을 실어 나르는 위험천만한 일을 벌이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에 휘말리는 이야기. 극단 연우무대의 동명 원작을 영화한 작품이다. 원작이 자랑하던 탄탄한 스토리 라인은 영화에서도 쭉 이어진다. 캐릭터와 사건들이 한 데 어우러져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를 완성했다. 연극에서 보여주던 '해무'의 음울한 무드가 공간적 제약이 덜한 영화 속에서 더욱 스피드하면서 스펙터클하게 살아났다. 영화적 상상력을 모두 동원해 최대한 사실적 그림을 완성하려 노력한 흔적들이 신으로 이어진다. 높은 점수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해무'는 70%에 육박하는 해상 촬영으로 화제를 모았다. 영화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배경으로 들리는 바닷소리, 뱃사람들의 구수한 여수 사투리, 넘실대는 파도의 움직임까지…. 실제 안강망 어선을 공수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배 전체를 개조해 만든 갑판, 조타실, 기관실, 숙소칸 등 공간별 세트는 리얼리티를 높인 배경이 됐다.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은 사실감을 더했다. 탐욕스런 선장 김윤석, 그의 지시를 들을 수 밖에 없는 갑판장 김상호, 고뇌하는 기관장 문성근, 천박한 유승복, 색을 밝히는 이희준, 순수한 박유천과 한예리까지 출연진 모두에게 빈 틈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사건에 휘말릴수록 파렴치한 인간으로 변해가는 선장과 선원들, 두려움에 맞서야 하는 막내 선원과 홍매(한예리)에게 몰입할수록 긴장감이 더해졌다. 여기에 마치 스크린을 넘어온듯한 생선 비린내와 질식할 것만 같은 냉기 가스 냄새까지 맡은 것 같은 묘한 기분에 휘말리는 순간 기자는 결국 배 멀미를 하고 말았다. 월터의 상상이 현실을 지배한 듯한 기묘한 체험이었다.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