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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기 고문 사퇴'펜싱협회,안으로부터의 개혁 시작됐다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 4대악 합동수사센터 설립 이후 펜싱 관련 민원만 무려 50~60건이 쏟아졌다. 집행부와 반대파의 골깊은 파벌다툼이 원인이었다. 확인불가한 마타도어가 횡행했고,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투서가 폭주했다. 7월 중순, 체육계 감사 정국속에 횡령 의혹을 받던 실업팀 감독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감독의 빈소에서 펜싱인들은 울분과 아쉬움의 눈물을 쏟아냈다. 개혁의 방향성에 대한 갑론을박도 계속됐다. '세계2강' 대한민국 펜싱의 치욕이자 최대 위기였다.

손길승 대한펜싱협회 회장(SK텔레콤 명예회장)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외환위기속에서 회사를 살려냈던 '백전노장' 전문경영인답게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었다. 한국 펜싱의 미래를 위한 '비전2020'을 만들고, 런던올림픽 현장에선 일주일 넘게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열혈응원전을 펼치는 등, 후방에서 지원했던 '펜싱애호가' 회장님이 위기의 순간, 전면에 나섰다.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던 펜싱계가 안으로부터의 개혁을 시작했다.

손 회장은 25일 긴급이사회를 소집했다. 파벌 다툼으로 얼룩진 협회를 직접 챙겨 반드시 정상화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광기 상임고문의 사퇴다. 2003년 이후 10년 넘게 펜싱협회의 '절대권력'으로 불렸던 이 고문이 협회의 모든 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펜싱선수 두 아들을 둔 이 고문은 2003년 중고펜싱연맹회장으로 펜싱계에 발을 들인 후, 2006년 협회 부회장에 선임됐다. 2009년 실무부회장으로 실권을 잡았고, 지난해부터 협회 상임고문으로 일했다. 문체부 4대악 합동수사반의 감사 과정과 국민체육진흥공단 고 서모 감독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고문은 협회를 통해 '오랜시간 번민과 고통에 괴로웠고 반성한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우며 고 서 감독과 같은 아픔이 재발하지 않길 바란다. 후배들을 위해 용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5일 긴급이사회에서 손 회장은 참석한 이사진들에게 이 고문의 사퇴를 공식 통보했다.

손 회장은 서 감독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러한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 뼈를 깎는 협회 스스로의 자정노력과 자구책이 뒤따라야 함을 강조했다. 첫 단추는 소통이다. 부회장단과 제도권외 원로들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어 기존 제도권 외 인사들과의 만남을 정례화한다.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펜싱계 전반의 여론을 적극적으로 수렴할 예정이다. 오랫동안 펜싱계를 양분시켜온 파벌간 갈등을 타파하고, 다양한 펜싱인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펜싱협회 스스로 '4대악 척결을 위한 자정위원회'를 설치하고, 펜싱인들의 의견을 수렴한 '자정결의'도 채택하기로 했다.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온 스포츠 4대악 척결 의지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이다.

가장 중요한 대표팀 경쟁력 제고 방안도 마련했다. 인천아시안게임 및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2강' 펜싱코리아의 경쟁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국가대표 경기력 강화를 위한 '경기력강화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전문성과 선발의 객관성을 제고하기 위해 기존 4명인 강화위원회 인원을 7~8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비온 뒤 땅이 굳듯, 한국 펜싱이 아픔을 딛고, 단단한 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