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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로컬보이' 김승대, 포항의 레전드를 꿈꾼다

그저 축구가 좋았다.

큼지막한 잿빛 제철소 안에 위치한 푸른 그라운드, 그 안에서 매주 검붉은 유니폼을 입고 박수를 받는 형들의 모습은 소년의 꿈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축구장으로 향하는 길은 즐겁기만 했다.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기어이 '로컬보이'의 꿈을 이뤘다.

프로 2년차 미드필더 김승대(24)는 올 시즌 초반 포항의 간판이다.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에서 5경기 연속골(6골)로 '진격의 거인' 김신욱(울산)을 제치고 득점 선두에 올랐다. 1m76의 윙어가 만든 작은 기적이었다. 2년차 징크스가 무색하게 뛰어난 기량과 결정력으로 황선홍 포항 감독과 포항 팬들을 웃음짓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김승대에겐 더 큰 경쟁의 신호탄일 뿐이다.

▶꿈을 키운 스틸야드

김승대는 포항 토박이다. 1991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축구 열혈 팬인 아버지를 따라 포항 스틸야드 뿐만 아니라 조기 축구회까지 따라 다녔다. 어린 김승대에게 축구는 일상이었다. "어릴 적부터 축구장을 다니면서 어른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축구가 익숙했다." 김승대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02년 포철동초 축구부에 입단했다. 또래보다 곧잘 볼을 찬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6학년 때 운동이 너무 힘들어 아버지와 함께 감독을 찾아가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중-고교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쑥쑥 크는 친구들보다 작은 키, 치열하게 이어지는 경쟁 모두 스트레스였다. 김승대는 "매년 선수 생활을 놓고 고민을 했다. '내 길이 아닌가보다'라는 생각에 포기하려고도 했다. 그때 놓았더라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고3이던 2009년 비로소 주전 자리를 잡았고, 2010년 청소년대표팀(19세 이하)에 발탁되면서 비로소 기량을 인정 받았다. 영남대를 거쳐 2013년 포항에 입단하면서 결국 꿈을 이뤘다. "프로 첫 해 개막전부터 출전명단에 이름이 올라갔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처음 그라운드에 섰을 당시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골폭죽, 그저 경쟁의 힘일 뿐

K-리그는 한국 축구의 정점이다. 내로라 하는 선수들의 각축장이다. 한 해에도 숱한 샛별이 떠오른다. 그러나 빛을 잃는 것도 한순간이다. 초반에 반짝했던 김승대도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반기 초반 몇 경기에서 선발과 교체를 오가다 기회가 끊겼다. 내가 잘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계속 떨어졌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후반기에 무승과 주전들의 컨디션 난조가 이어지자 황 감독은 김승대를 다시 호출했다. 김승대는 지난해 막판 5경기 연속 공격포인트(3골-3도움)를 기록하면서 눈도장을 받았다. 올 시즌에는 개막전부터 선발로 나서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연일 골폭죽을 터뜨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하다. "이미 한 차례 시련을 겪어봤다. 포항은 선수 간 실력 차가 크지 않다. 내가 부진하면 언제든 주전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초반 흐름이 주전 자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불안하다." 처음 축구화를 신을 때부터 겪어온 피말리는 경쟁은 김승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태극마크 보다 포항

포항에서 초등생 때부터 유스 시스템에 발탁되어 프로까지 올라온 것은 김승대와 배천석이 유이하다. 포항은 김승대의 삶이다. 김승대는 "가족이 모두 포항에 있다보니, 타지에서 온 다른 선수들에 비해선 편안한 기분"이라며 "축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누구보다 기뻐하신다"고 웃었다. 고향살이는 더욱 낮은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채찍질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항상 겸손한 자세로 상대에게 예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나 역시 고향팀의 일원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

월드컵의 해다. 연일 터뜨리는 골폭죽은 홍명보호 승선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경기당 1골씩 넣는 선수가 있다면 당연히 뽑을 것"이라던 홍명보 감독의 발언을 두고 김승대의 대표 발탁 명분은 충분하다는 말도 나온다. 본인은 손사래를 쳤다. "아직 한참 멀었다. 초반에 반짝하는 실력으로 대표팀까지 간다는 것은 상상해보지 않았다. 지금은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다."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차분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싶을 뿐이다. 김승대는 "대표팀 발탁이나 해외 진출 같은 꿈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는 과분한 것들이다. 포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내 할 일을 잘 하면 곧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에서 태어나 포항이 키웠고, 이제는 포항의 얼굴이 됐다.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포항의 레전드가 되는 게 김승대의 최종 목표다. "포항은 내 삶이다. 선수 생활의 종착점도 스틸야드가 될 것이다." 포항=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