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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눈물의 그라운드는 기적을 기도했다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하지만 흘러가는 1분, 1초의 흔적이 아프고, 슬프다.

'마의 72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러나,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아서도, 놓을 수도 없다. 믿고 싶지 않은 야속한 현실이다. 전남 진도의 맹골수로에 세월호가 누워있다. 대한민국의 꿈많은 미래들이 선실에 갇혀 있다.

골, 골, 골에 열광하는 녹색 그라운드도 눈물을 흘렸다.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9라운드가 열린 그곳에는 기적을 기도하는 '슬픈 목소리'로 가득했다. 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화창한 봄날이었다. 20일 FC서울과 포항 스틸러스가 격돌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평소보다 적은 1만3544명의 팬들이 찾았다.

환호할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트레이드마크인 검붉은 타이를 벗었다. 그에게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징표다. 그 자리에는 검은색 타이가 대신했다. "1인당 GDP가 얼마인데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느냐. 애들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 모두다 어른들의 책임이다." 격앙된 목소리가 대한민국의 어두운 오늘이었다.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선수들도 모두가 슬퍼하고 있다." 서울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호주 원정 기간 중 세월호의 비보를 들었다.

황선홍 포항 감독도 똑같은 심경이었다. "마음이 무겁고, 안타깝다. 밝은 분위기로 경기하기가 어렵다. 골을 넣더라도 과도한 세리머니는 자제하자고 얘기했다." 경기를 앞둔 양팀 벤치의 얼굴이었다.

휘슬이 울렸다. 관중석도 적막이 흘렀다. 승리보다는 기적을 염원했다. 함성과 응원가의 물결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울 서포터스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마음 깊이 추모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포항 서포터스석도 '힘내세요.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기적은 그대들을 위해 당연합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펼쳤다.

응원이 사라진 그라운드에는 평소에 들을 수 없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비명, 볼을 차는 둔탁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서울 뿐이 아니었다. 19일 울산, 부산, 전남(이상 클래식·1부 리그), 원주, 충주, 수원(이상 챌린지·이상 2부 리그), 20일 창원, 제주(이상 클래식), 광주(챌린지)도 슬픔이 그라운드를 채웠다.

수학여행 길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선 단원고 학생들의 연고 프로축구팀인 안산 경찰청은 이날 열릴 예정이던 고양과의 챌린지 홈 경기를 연기했다. 해외파들도 아픔을 함께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카디프시티에서 활약하는 김보경은 팔에 검은 완장을 차고 달렸다. EPL을 중계하는 영국 방송사는 애도의 의미를 담아 김보경의 팔에 쓸쓸하게 감긴 완장을 조명했다.

2014년 4월 20일, 잔인해도 너무 잔인한 봄날이다. 그라운드의 유일한 소망은 기적이다. 상암=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