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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8실점' 박찬호,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들

이래서야 과연 박찬호에게 선발 한 자리를 줄 수 있을까.

30일 잠실구장. LG와의 시범경기를 앞두고 만난 한대화 감독은 박찬호에 대해 "잘 던지길 기대해야지"라며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으니 내가 특별히 주문할 게 없다.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투구가 향후 선발진 운용계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질문엔 "대답하기 곤란한 부분"이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한 감독의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찬호는 이날 5이닝 동안 79개의 공을 던지며 10피안타 1홈런 1볼넷 3탈삼진 8실점했다. 6회 연속 4안타를 맞은 뒤 예정된 투구수 90개를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지난 14일 SK와의 연습경기(2⅔이닝, 5안타, 2탈삼진, 1볼넷, 4실점)와 시범경기 첫 등판인 21일 청주 롯데전(3⅓이닝, 6안타(1홈런), 2탈삼진 1볼넷, 4실점)에 이어 또다시 이름값에 한참 못미쳤다.

특히 이닝별로 기복이 심한 투구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과제1: 왼손타자 극복

LG는 좌타자가 유독 많은 팀이다. 이날도 LG는 라인업에 왼손타자 6명을 내세웠다. 1번 이대형-2번 이병규(배번7)-3번 이진영-5번 박용택-7번 서동욱(스위치히터)-9번 오지환이 나왔다. 이병규(배번9)가 컨디션 조절 차 휴식을 취한 게 박찬호에겐 그나마 다행일 정도.

박찬호는 1회초부터 약점을 노출했다. 몸이 덜 풀렸는지 이대형에게 5구 만에 볼넷을 내줬다. 다음 타자는 '작은' 이병규. 박찬호는 발 빠른 주자 이대형을 무척이나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이병규와 승부 하면서 견제를 두 개나 던졌다. 이병규에게 우전안타를 허용했지만, 방망이가 부러지는 빗맞은 안타였다. 그래도 볼끝에 위력은 있었다.

하지만 3번타자 이진영은 다시 초구로 들어온 바깥쪽 직구를 결대로 툭 밀어쳤다. 깔끔한 좌전안타. 첫 실점을 허용했다. 왼손타자를 요리할 해법을 고민해야 할 모습이었다. 박찬호는 정성훈과 박용택을 각각 유격수 땅볼과 3루수 땅볼로 잡아내며 긴 1회를 마쳤다. 수비의 도움에 기뻐하는 모습도 보였다.

▶과제2: 상대타자 파악하기, 방심은 금물

이날 박찬호의 직구 최고구속은 144㎞. 대부분 140㎞ 초반에서 형성됐다. 스피드도 기대에 못미쳤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변화구였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던진 변화구가 얻어맞았다.

박찬호는 2회 LG 유강남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했다. 지난 21일 롯데 황재균에게 맞은 홈런 이후 두번째 피홈런이다. 볼카운트 2-0에서 던진 커브가 한가운데로 높게 들어갔다. 좌익수 최진행이 이내 쫓아가기를 포기했을 정도로 잘 맞은 홈런이었다.

2년차 유강남은 방망이 힘은 워낙 좋은 타자다. 박찬호는 홈런을 허용한 뒤 어이가 없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본인도 정규시즌에서는 상대 타자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을 것이다.

박찬호는 3회에도 LG의 왼손타자 라인을 상대했다. 1사 후 이병규와 이진영에겐 체인지업을 던지다 깔끔한 안타를 허용했다. 밋밋하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LG 타자들은 이른 볼카운트에서도 지체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1사 1,3루 위기. 다음 타자 정성훈은 볼카운트 2-1에서 직구를 공략해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만들어냈다. 투수에 유리한 볼카운트임에도 직구가 치기 딱 좋은 높이로 들어간 게 문제였다.

▶곧바로 해법 찾나 싶었지만…

박찬호는 4회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7,8,9번 하위타선이었지만, 왼손타자가 2명 있었고 나머지 1명은 첫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낸 유강남이었다.

이때만큼은 메이저리그 124승의 관록이 살아나는 듯 했다. 서동욱에게 느린 커브로 삼진을 잡아낸 뒤 유강남에게 또다시 커브 2개를 연달아 던졌다. 볼카운트 2-0에서 던진 마지막 공은 직구. 몸쪽으로 꽉 찬 직구에 유강남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자신이 홈런을 맞았던 공을 재차 던져 이겨내는 모습이었다.

왼손타자 오지환을 삼진으로 돌려세울 땐 1회나 3회와 정반대로 갔다. 박찬호는 앞서 왼손타자를 상대로 바깥쪽으로 공을 던지다 얻어맞았다. 이번엔 피해가기 보다는 정면승부를 택했고, 오지환의 배트를 이끌어낸 뒤 마지막 공은 또다시 바깥쪽으로 꽉 찬 공을 던졌다. 양쪽 코너워크가 자유로웠고, 몸쪽의 비율이 다소 높은 모습이었다.

경기 초반 다소 많은 공을 던졌지만, 5회엔 맞혀잡는 피칭으로 단 9개의 공만 던지며 이닝을 마쳤다. 투구수 관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6회 4안타를 내주고 쓸쓸히 마운드를 내려갔다. 5회 완벽하게 보여줬던 좌우 코너워크가 또 실종됐다. 특히 무사 만루에서 서동욱이 친 체인지업은 가운데서 밋밋하게 떨어졌다. 크게 힘을 싣지 않고, 툭 쳤는데도 우중간으로 향하는 안타가 됐다. 이날 대체로 말이 듣지 않았던 체인지업을 다시 던져봤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잠실=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