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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호, 홍명보를 배워야 산다

"당장은 출전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박경훈 제주 감독은 소속팀의 중앙 수비수 홍정호(22)가 3일 승부조작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출신의 홍정호는 두 차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꾸준히 훈련해 6일 대구전에 출전할 수 있는 몸 상태다. 그렇지만 박 감독은 "출전시킬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규리그 9경기 연속 실점으로 속앓이하고 있지만 "축구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며 홍정호에게 자숙의 시간을 갖게 하겠다는 의미였다. 박 감독은 "사실 우리 팀에 홍정호가 있고 없고 차이가 엄청 크다. 매 경기 실점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홍정호가 절실한 상황이다"면서도 "하지만 축구 선수 이전에 성숙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 공인으로서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한국축구를 이끌어나갈 유망주로서 준비가 됐을 때 출전시킬 생각이다"고 말했다.

올시즌 개막전에서도 팬들에게 주먹욕설을 해서 6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던 홍정호다. 홍정호가 뼈저리게 반성했으면 하는 박 감독은 조만간 그와 면담해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판단되면 13일 대전전이나 20일 서울전 때 출전시킬 계획이다.

홍정호를 잘 아는 축구인들은 그가 이번 기회를 통해 좀 더 성실하고 겸손해야 하며 자기관리에 철저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유망주에서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난해 A대표팀 데뷔전에 홍정호를 발탁한 조광래 대표팀 감독은 지난 1월 카타르아시안컵 때 그를 벤치에 두는 시간이 많았다. 겉멋이 들어 훈련 태도와 생활 면에서 불성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세가 경기 중 실점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실책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 많다. 홍정호는 2009년 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 8강 가나전,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이란과의 3~4위전 등 고비 마다 실책을 저질러 골을 헌납했다.

홍정호는 현역시절 한국축구의 대들보였던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에게 배울 점이 많다. 홍 감독은 흔히 "축구는 참 정직한 운동이다"고 말한다. 정신 상태와 훈련 상태가 그대로 플레이로 발현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밤 11시면 칼 같이 잠잤고 아침 8시면 어김없이 눈을 떴다. 축구에 해가 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의 좌우명인 '일심'(一心)대로 축구만 보고 달렸다. J-리그 시절에는 일본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어 사상 최로로 외국인 주장도 맡았다. 책임감이 뛰어났다. 잘 나갈 때 스스로에게 채찍질했고, 부진할 때는 냉철하게 자신을 되돌아봤다.

홍정호에게 홍 감독은 각별한 존재이기도 하다. 자신을 청소년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에 발탁해 지금의 자리에 있게 했다.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을 앞두고 있는 홍 감독은 지금 홍정호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홍정호가 달라져야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도, 조광래 A대표팀 감독도, 박경훈 제주 감독도 산다. 홍정호는 그걸 알아야 한다.

국영호 기자 iam90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