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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선, 너무 싫다' 3대1 경쟁 뚫고 지켜낸 마무리, 그의 경쟁자는 58억 FA가 아니었다[BB Inside]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괜찮을겁니다."

일본 오키나와 캠프 막판이던 이달 초. 온나손 볼파크에서 만난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42)은 '그 답게' 짧고 굵은 한마디를 남겼다.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는 말이었다. '캠프 동안 준비를 잘했다. 올 시즌은 작년보다 나을 것'이라는 의미.

오승환은 호들갑 떨지 않는다. 오버 하지 않는다. 대기록 앞에서도, 큰 경기 앞에도 늘 덤덤하기만 한, 그래서 일찌기 '돌부처'란 별명으로 불리던 사나이.

이 정도 톤이면 제법 강한 긍정이었다. 그래서 큰 의심 없이 믿었다. 2024 시즌, 끝판왕의 완벽 부활을….

아니나 다를까,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만 3명인 3대1 클로저 경쟁을 뚫고 개막 마무리를 맡았다. 4년 58억원을 배팅해 영입한 FA 김재윤이 셋업맨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키움 마무리 출신 임창민까지 가세해 최강 트로이카 불펜을 구축했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 마운드에 오르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불펜이 대대적으로 강화된 팀의 마무리 낙점은 대단한 일이다.

벤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23일 수원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개막전부터 오승환은 듬직하게 빛났다.

임창민 김재윤에 이어 2-2로 맞선 9회말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연장 10회까지 2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지키며 승리투수가 됐다. 삼성 타선이 10회 4득점 하며 6대2 개막전 승리를 품에 안았다. 구단 측정 최고 구속 148㎞의 직구에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등 다양한 변화구를 섞어 타이밍을 빼앗았다. 자신감 넘치는 정면승부로 19구 만에 2이닝을 삭제했다.

개막 두번째 경기는 쉴 거라고 생각했다. 삼성 타선이 대폭발 하며 9회초까지 11-1로 크게 앞섰기 때문이다.

불펜B조가 가동됐다. 하지만 9회말 사달이 났다. 뒤늦게 타선이 깨어난 KT에 대거 7실점을 했다.

순식간에 11-8까지 쫓겼다. 만에 하나 역전패 하면 그야말로 '재난적' 상황이 될 절체절명 위기 상황.

2사 주자 2루. 오승환이 부랴부랴 준비해 마운드에 올랐다.

거침 없이 불 타오르던 KT 타선. 가뜩이나 타석에는 큰 것 한방을 칠 수 있는 베테랑 황재균이 서있었다.

오승환은 당황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지만 직구와 슬라이더를 적절히 섞어 5구 만에 우익수 뜬공을 유도했다. 그걸로 경기는 끝. 무려 15년 만의 개막전 싹쓸이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2경기 2⅓ 이닝 동안 1안타 무4사구 무실점으로 1승 1세이브.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아있는 역사인 그의 기록. 통산 401세이브가 새겨졌다. 김재윤 임창민 등의 가세는 매 시즌이 도전인 오승환에게 건강한 긴장감을 불러왔다. 맏형이 2군 캠프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몸을 만드니 후배 투수들이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시너지 효과가 또렷하다.

"경쟁이라고 표현들을 하시지만, 결국 이 팀의 좋은 성적을 위해서 선수들이 각자 노력을 더 하는 부분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팀의 1승을 위해 다 같이 뛰고, 노력하는 건데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그런 경쟁이라는 말은 사실 좀 어색하지만 그러면서 팀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모두 좋은 에너지를 다 받고 있고요."

하지만 오승환이 의식하는 경쟁자는 김재윤이 아니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열망. '그 나이에 되겠어?' 하는 의구심, 선입견과의 싸움이다. 결국 넘어야 할 건 자기 자신이다.

"저는 '어떤 선수를 이겨야겠다' 이런 것보다 '이제는 좀 내려놔도 되겠다' 주위의 그런 시선이 너무 싫거든요. 제가 유니폼을 입고 이렇게 운동장에서 뛸 때 만큼은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이런 얘기가 좀 안 나오게끔 하고 싶어요. 제가 스스로를 극복해야 또 저 같은 선수가 나올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런 면과 싸우려는 마음이 더 있는 것 같아요."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