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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해야 후배들이...' 위기 속에도 끓어 오르는 대투수의 승부욕, 그리고 책임감

[인천공항=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나만 잘 하면 된다."

'위기'라는 표현도 부족해 보일 정도의 소용돌이, 그 속에서도 '대투수' 양현종(36·KIA 타이거즈)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양현종은 KIA 투수조 최고참으로 호주 스프링캠프에 나선다. '고참'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은 나이고, 그 역할을 수행한 지도 몇 년이 흘렀다. 하지만 올해는 그 무게감이 적지 않다. '감독 없는 스프링캠프'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누군가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코치들이 아무리 독려해도 결국 야구를 하는 건 선수들. 그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건 베테랑의 카리스마와 경험, 리더십이다.

사실 양현종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나도 이런 일이 처음이어서 당황스럽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첫 마디는 평소의 양현종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무거운 분위기지만 캠프로 가는 길이니 눈치 보거나 고개 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양현종은 "그동안 스스로 생각했던 각오와 올해 목표를 한 번 더 마음 속에 새기면서 비행기에 타자고 했다. 선수들 모두 무슨 말인지 와닿았을 거라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투수 코치 두 분이 모두 바뀌셨다. 코치님과 어린 선수 사이에서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베테랑의 역할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양현종은 여전히 KIA 마운드의 상징과 같은 이름이다. KBO리그 통산 최연소 160승, 최다 선발 등판 및 최다 선발승, 개인 통산 다승 단독 2위, 10시즌 연속 100이닝 달성 및 역대 2번째 1900탈삼진, 역대 3번째 9시즌 연속 세 자릿수 탈삼진, 역대 3번째 2300이닝, 9시즌 연속 170이닝 등 일일이 세기도 버거울 정도의 기록을 갖고 있다. 올해도 그는 탈삼진 101개를 추가하면 송진우가 갖고 있는 KBO리그 개인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2048개)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통산 최다 선발 등판(383경기) 및 최다 선발승(166승) 기록은 그가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이길 때마다 새롭게 쓰여진다.

지난해 KIA에서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투수는 이의리(22·11승) 단 한 명 뿐이었다. 외국인 투수는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두 명 모두 교체됐고, 양현종이 9승에서 멈춰섰다. 신인이었던 윤영철(20)이 8승을 올린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지만, '팀 승리 보증수표'로 여겨지는 10승 투수 부족은 KIA가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였다.

여전히 양현종은 두 자릿수 승수를 채울 수 있는 투수로 여겨진다. 어느덧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구위-구속이 저하됐다는 평도 있지만, 제구와 노련한 수싸움으로 부담을 극복했다. 9시즌 연속 170이닝을 돌파하는 등 이닝 소화력도 충분한 투수다. 다만 지난해 리그 평균(3.23점)에 못 미치는 2.79점의 득점 지원, 후반기에 드러났던 기복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10승 복귀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현종은 "아프지 않는 게 우선이다. 어느덧 연차가 쌓이다 보니 체력적인 준비도 필요할 듯 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선수들이 겨울에 새로운 시스템을 많이 배워왔다. 정말 잘 하려 많이 노력한다고 생각했다"며 "나 역시 배울 건 배우면서 체력, 정신적으로 잘 준비해야 한 시즌을 잘 치를거라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가져야 할 부담은 내가 짊어졌으면 한다. 다승이나 150~160㎞의 공을 던지는 것도 좋지만 이닝만 길게 가져간다면 팀에 도움이 되고 어린 투수들에게 부담을 줄 필요도 없다"며 "오래, 길게 던졌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했다.

격랑에 휩싸이기 전까지만 해도 '우승후보'로 평가 받았던 KIA다. 양현종은 "작년에 가을야구 문 앞까지 갔다가 안 좋았다. 하지만 9연승 기간 어느 팀과 붙어도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캠프 기간 선수들이 모두 합류하고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면 분명 작년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갈 거라 확신한다. 부상만 조심한다면 더 추운 날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기 속에서도 대투수의 승부욕은 식지 않는 눈치다.

인천공항=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