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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혁의 수다톡톡]'타임슬립'·'N차 인생' 빼면 드라마가 안되나? 비슷한 설정 반복에 '신선함=제로'

[스포츠조선 이정혁 기자]타임슬립, N차 인생 빼면 이야기가 안되나?

안방극장이 시간여행자들 천지다. 과거로 미래로 타임슬립을 한 드라마가 올해 내내 전파를 타고 있으며, 악마에 구미호에 얽히고 설킨 전생 인연이 현란에게 되풀이 되고 있다. 하도 비슷한 설정이 많다보니, 처음 회귀물이 등장했을 때의 신선함은 확 사라지고, 엉성한 설정에 구멍 전개가 눈에 들어온다.

2023년 한해 내내 안방극장엔 타임슬립을 내세운 드라마가 넘쳐났다. 지난 6월 말 막을 내린 KBS2 '어쩌다 마주친, 그대', 지난달 종방된 tvN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모두 타임슬립이 소재. 각각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농인부모의 자녀인 소년이 과거로 가 아버지의 어린시절을 만나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는 이야기('반짝이는 워터멜론'), 두 남녀주인공이 과거로 가 각각의 부모를 만나면서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담고 있다. TV조선 '아씨두리안'은 보다 복잡하지만, 역시 조선시대의 두 여인이 시간여행을 해 현재의 남자들과 얽히는 판타지 멜로극이다.

시간여행자 또는 인생 2회차를 사는 주인공 이야기는 요즘도 넘쳐나는데, MBC 금토드라마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이 대표적인 예다. 조선시대 양반가 규수였던 이세영(박연우)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던 중 2023년으로 타임슬립하게 된다. 그곳에서 과거 자신의 지아비와 똑같이 닮은 배민혁(강태하)을 만난다. 현세의 배민혁은 사방천지 적뿐이고, 부모님까지 의문사를 당한 상황. 상처투성이 배민혁에게 묘하게 끌리는 이세영이 조선에서처럼 남편을 허망하게 떠나보내지 않고 인생을 바꾸게 될지가 이후 관전 포인트.

여기에 MBN '완벽한 결혼의 정석'도 살해당하기 전 과거로 돌아가게 된 여주인공의 복수극을 그리고 있으며, 내년 1월1일 방송되는 박민영 주연의 '내 남편과 결혼해줘' 또한 기본 설정은 비슷하다.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날, 살해당한 여주인공이 10년 전 과거로 돌아가면서 인생 2회차에서 본격 복수극을 펼친다는 이야기다.

어디 이뿐인가. 자유롭게 시간을 넘나들거나 수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악마('마이 데몬'), 구미호('구미호뎐 1938') 등을 통해 사실상 시간여행을 이야기의 주된 전제로 내세운 드라마들도 줄을 잇고 있다. 알고보니 전생의 질긴 인연이 다시 만났다는 설정('이 연애는 불가항력')도 익숙하다 못해 식상하다.

이같은 타임슬립, 회귀물의 범람은 개연성을 무시하고 감동적이거나 드라마틱한 상황을 쉽게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또 날이갈수록 멜로, 스릴러, 추리극, 로맨스 등 복합 장르를 선호하는 요즘 트렌드에 타임슬립은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설정이 될 수 있다.

또 이 드라마들이 대부분 웹소설이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 치밀한 이야기 구성과 디테일한 캐릭터 설정, 깊은 감정에 대한 묘사 등보다는 극적인 설정에 더 집중하게 되는 원작의 장르적 특징이 '어느날 눈을 떠보니'라는 전개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같은 회귀물, N차 인생, 전생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들이 드라마로 무대를 옮길 경우 허점을 노출하게 되면서, 이야기의 밀도를 떨어뜨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세영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열녀박씨 계약결혼뎐'만 해도 요즘 한글을 못읽는 이세영이 어려운 계약결혼 계약서도 척척 읽고 사인까지 하더니, 뒤늦게 한글 공부를 하는 것으로 나온다. 조선시대 양반가 규수가 갑자기 '새조선'에 떨어졌는데, 바지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 등(최소 '아씨 두리안' 주인공들은 한복을 벗고 다리를 드러내는 것을 어색해하기라도 했음) 각잡고 보면 말 안되는게 한두개가 아니다. 왜 화접도 진품이 갑자기 창고에 있고, 위작이 걸리게 됐는지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를 매의눈으로 포착해낸 이세영의 눈썰미도 거의 슈퍼우먼급 수준.

이가운데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의 거침없는 시청률 상승세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3일 시청률 조사 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일 방송된 KBS 2TV 공영방송 50주년 특별 기획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7회는 전국 기준 8.4%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직전 방송분 6회(11월 26일) 시청률 7.8%보다 0.6% 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동시간대(오후 9시대) 지상파 시청률 1위다.

이와 관련 방송가 관계자는 "결국은 이야기"라며 "자극적인 소재나 극적 설정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어도 촘촘함 이야기 전개와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설득력있게 살아있지 않다면 채널을 고정시킬 힘을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