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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비하인드]'전투복 빨래 없다!' 일부러 경고받은 '카드세탁남', 황선홍호는 다 계획이 있구나

[진화(중국)=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아시안게임 최초의 3연패에 도전하는 황선홍호가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작은 디테일까지 챙기고 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맏형인 와일드카드 박진섭(27·전북)은 21일 오후 중국 저장성 항저우 진화스타디움에서 열린 태국과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후반 7분 경고를 받았다. 더 정확한 표현으론 '경고를 유도했다'.

과정이 흥미롭다. 코너키커로 나선 박진섭은 진지한 표정으로 킥을 시도하려다 멈춰섰다. 찰듯 말듯, 찰듯 말듯 차지 않았다. 주심의 구두 경고가 이어진 뒤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결국 주심이 다가와 박진섭에게 옐로카드를 내밀었다.

보통의 상황이면 '이 정도로 무슨 경고를 주냐'며 항의를 했을 터. 하지만 박진섭은 빠르게 순응했다. '경고감인걸 인정한다'는 듯이 심판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그렇다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코너킥을 찼을까? 아니다. 동료에게 코너킥을 맡기고 원래 자리인 문전 앞으로 돌아갔다.

이 모든 게 계획된 것이었다. 박진섭은 4대0 대승한 경기 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경고를 받은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픽 웃었다. 미리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얘기.

"시나리오였다. 원래 이 정도면 바로 경고를 주는데, 오늘 심판은 경고를 쉽게 안 주더라"며 "코너킥을 찬게 한 6년만인 것 같다. 경기 후 선수들이 한마디씩 했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본 (이)강인이도 내가 연기를 너무 못했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공중볼 능력이 좋은 박진섭은 소속팀에서 주로 코너킥을 이마로 받아 득점하는 역할을 한다.

카드세탁이 사전에 설계된 것이라면 코치진도 인지하고 있었단 말이 된다. 황선홍호는 왜 그랬을까. 이게 다 토너먼트를 위한 설계다. 쿠웨이트전에서 경고 한 장을 받은 박진섭은 누적경고로 24일 바레인과 조별리그 3차전에 '강제휴식'을 취한다.

대표팀은 태국전 승리로 최종전 결과와 상관없이 조 1위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박진섭은 2~3일 간격으로 진행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토너먼트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한다. 주장 백승호(전북)를 비롯해 지난 2경기에 연속해서 출전한 고영준(포항) 황재원(대구) 등 주축 자원들도 휴식을 취할 예정.

박진섭은 황선홍호 내에서 그 정도로 중요한 선수로 여겨진다. 황선홍 감독이 직접 택한 와일드카드 세 명 중 한 명인 박진섭은 2경기 연속 선발 출전해 무실점 13득점 연승을 이끌었다. 센터백 파트너만 쿠웨이트전 이한범(미트윌란)에서 태국전 이재익(이랜드)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칫 '카드세탁' 논란이 일 수 있다. 세르히오 라모스와 사비 알론소는 레알마드리드에서 뛰던 2010년 유럽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차전에서 고의로 퇴장을 당한 의혹을 받았다. 결국 지시를 한 조제 무리뉴 당시 레알 감독과 두 선수는 징계를 받았다. 박진섭은 "내가 본선(토너먼트)에 올라가 경기를 못 뛰면 팀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가대표팀 경력 한 번 없는 박진섭은 입대를 해야하는 꽉찬 나이에 아시안게임 출전 기회를 잡았다. 그는 "최대한 말을 적게 하고, 지갑을 열려고 한다. (백)승호가 중간 역할을 너무 잘해주고 있다. 나는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이라며 "이 팀에는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다. 평상시엔 웃으면서 잘 지내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박진섭은 이강인의 영향력에 대해선 "모두가 느끼고 있다. 팀에 합류하면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강인은 이날 오후 항저우 공항에 입국해 한국-태국전을 관중석에서 박진섭이 고의로 경고를 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진화(중국)=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