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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절 할 뻔 했다' 궂은 일 도맡아 하는 서른다섯 잠수함, 이유 있는 '내 탓이오'[인터뷰]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마당쇠', '전천후'란 표현.

멋져보이지만 사실은 허드렛일, 궂은일을 하는 선수에게 붙은 수식어다.

삼성 라이온즈에도 있다. 베테랑 잠수함 김대우(35)다.

프로 13년 차인 그는 여전히 딱 정해진 보직이 없다. 선발도 아니고 필승조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등판하는 '마당쇠', 또는 '전천후' 투수다.

지난 7일 대구 NC 다이노스전에는 임시 선발로도 나갔다. 5선발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갑작스레 결정됐다.

지난 1일 양창섭이 SSG전에서 크게 무너지자 대안이 없었다. 벤치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양창섭이 무너진 경기에 바로 투입해 3이닝을 소화하도록 했다. 6일 후 선발 등판을 위한 포석.

선발 준비도 따로 안 했던 수술 후 회복한 투수. 하지만 제 역할을 멋지게 해냈다. 선발 4이닝 3안타 2볼넷 3탈삼진 무실점.

3회까지 큰 위기 없이 완벽한 피칭을 선보이던 김대우는 투구수가 많아지 면서 4회 살짝 힘이 빠졌다. 1사 만루 위기. 박세혁의 중전적시타성 타구를 2루수 김지찬이 그림 같은 점프캐치로 병살 처리하며 위기를 지웠다.

"너무 좋았어요. 진짜. 올 시즌 중 가장 좋았던 순간 중 하나였죠. 너무 고맙다고 했어요. 큰 절까지 할 뻔 했어요.(웃음)"70구를 소화했다. 1이닝만 더 채우면 선발승도 기대할 수 있었지만 미련없이 마운드를 물려줬다.

빛나지 않지만 팀을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선수. 김대우의 자리다. 팀이야 고맙지만 개인에게는 가혹하다. 수년간 쌓여 결국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까지 받고 지난해 1년을 개점휴업하다시피 했다. 정신 없이 달려왔던 시간. 의미 있었던 쉼표였다.

"팔도 팔이지만 복합적으로 많은 부위에 부상이 오면서요. 아 그냥 올해는 진짜 쉬어가라고 하는구나,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해도 이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구나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받아들였고요. 어린 선수들이랑 같이 운동을 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정말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현재의 위치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던 시간.

김대우의 출발선상은 안정된 보직자들과는 다르다.

확실히 보장된 휴식 후 등판하는, 예측가능한 선발 투수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 결과를 내는 건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롱릴리프와 선발을 오가다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면 그렇고 그런 투수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남 탓 하지 않는다. 오로지 제 탓이다.

"제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은 제 선택이에요. 제가 더 완벽한 필승조가 됐다면 그런 상황이 안 생겼을 거고, 이 모든 상황은 저로 인해서 만들어 진거라고 생각을 하려 해요. 그렇다고 제가 불행한 선수이거나 불행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저를 많이 사랑해주는 가족과 진짜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시는 저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진짜 행복한 선수다, 이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야구하고 있어요. 저도 이제 나이가 차면서 기회를 받은 날보다는 앞으로 받을 기회가 더 적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고 저 나름대로 항상 계속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계속 다짐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빛나고 싶은 건 인지상정. 그런 마음은 전혀 없을까.

"저는 제 인생에서의 주인공이긴 하지만요. 팀의 전체적인 부분으로 봤을 때 제가 조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 조연도 충분히 빛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소금 같은 역할이라고 이야기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라도 저의 쓰임이 가치적으로 증명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최채흥이 전역해 선발로 나서면서 김대우는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다.

그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핑계 대지 않고, 남 탓 하지 않는 긍정의 마인드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베테랑 투수. 그가 있어 많은 동료 선수들이 빛날 수 있다. 그 소중한 역할에 대한 감사함을 품고 오늘도 그라운드에 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