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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무대 넘보던 천재 유격수의 이름, 사직구장에 뜨겁게 메아리쳤다 [부산스케치]

[부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한때 '천재 유격수'로 불렸다. 메이저리그를 노크하던 국내 최고 재능의 타자였다.

롯데 자이언츠 이학주는 이제 주전 경쟁에서도 한발 물러난 백업 유격수다. 타율도 어느덧 2할을 밑돌았다. 동기부여를 강화하기 위해 시즌전 퍼포먼스 인센티브 계약을 맺었지만, 현실에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클래스는 살아있다. 2일 KIA 타이거즈전은 그가 왜 공수주에 두루 능한 '천재 타자'로 불렸는지를 증명한 하루였다. 이날 이학주는 '대투수' 양현종을 상대로 쏘아올린 만루포 포함 4타수 2안타 1볼넷 4타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14대2 대승을 이끌었다.

지난 겨울 '50억 FA' 노진혁이 합류한 이래 이학주가 주전 유격수를 넘보기는 쉽지 않아졌다. 오히려 내야 전체를 커버하는 멀티 백업 겸 대주자로서의 역할이 익숙해진 올해다. 이마저도 박승욱의 맹활약으로 출전기회를 잡기가 만만찮은 상황. 간혹 선발로 나서는 경기에서도 승부처에 대타에게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학주는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꿈꿨다. 그리고 올시즌 9번째 선발 출전에서 기적을 썼다. 1회부터 타선이 폭발하며 3-0으로 앞선 1사 만루, 양현종의 120㎞ 커브를 가볍게 걷어올려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이학주는 1루까지 전력질주했다. 1루를 막 돌아서는 순간 타구가 홈런이 됐다. 순간 주먹을 들어올리며 환호하는 이학주의 표정에는 수많은 감정이 서려있었다. 홈으로 들어오면서도 벅찬 감정을 마음껏 표현했다.

한때 동년배 중 최고의 재능으로 꼽혔던 그다. 요즘엔 보기드문 미국 무대를 직접 두드린 유망주다. 충암고 3학년 때 계약금 115만 달러에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었다. '드래프트 1라운더급 재능'으로 평가받은 것. 크리스 아처, 셸비 밀러, 훌리오 테헤란 등과 함께 유망주 랭킹을 주름잡으며 메이저리그 진입이 확실시되는 선수였다. 이후 트레이드로 탬파베이 레이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승격을 앞뒀던 2013년, 수비 과정에서 주자와 부딪치며 당한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이 평생의 한이 됐다. 이학주의 인생이 크게 기울어진 순간이었다. 훗날 국내 무대로 복귀한 뒤에도 군면제 판정이 내려진 이유다.

KBO리그 컴백도 쉽지 않았다. KBO리그를 거치지 않고 직행한 만큼 2년간의 비프로 유예 기간이 필요했다. 일본 독립리그를 거치며 유예기간을 마치고, KBO리그에 복귀한 뒤에도 삼성 라이온즈에서 워크에씩 논란이 불거지는 등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스프링캠프 때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에 몸담게 됐지만, 타율 2할7리로 부진했다. 선발 유망주 최하늘과 3라운드 지명권을 내준 결과인 만큼 팬들의 혹평이 뒤따랐다. 레전드 이대호가 직접 언급한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학주의 수비력은 여전히 롯데에서 유효한 가치다. 올해 보여주는 전천후 내야수로서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진심'이 빛을 발한 하루,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1만8996명 야구팬의 목소리가 일제히 이학주를 연호했다. 이학주는 "내 응원가를 이렇게 크게 들어본 적이 없다. 앞으로 더 자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부산=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