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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사표 품고 결승전 나선 전경준 감독, FA컵 우승에도 웃지 못한 이유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11일 DGB대구은행파크에서 열린 대구FC와 전남 드래곤즈의 '2021 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

전경준 전남 감독은 당일 오전 가슴에 사표를 품고 숙소를 나섰다. 지면 무조건 물러난다는 생각이었다. 그 전날 아내에게도 자신의 결심을 전했다. '벼랑 끝 승부를 펼치겠다'는 '배수진'의 의미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전 감독은 전날까지도 선수단 보강 작업으로 머리를 싸맸다. 대구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짜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지만, 이미 시작된 스토브리그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K리그2 타팀들은 일찌감치 시즌이 마감되며 본격적인 영입전을 시작했다. 문제는 '돈(예산)'이었다. 전 감독은 일찌감치 다음 시즌 계획을 구단에 전했다. 핵심 공격수로 활약한 브라질 출신의 발로텔리를 잡고, 또 한명의 외국인 선수를 더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구단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구단 살림을 이유로 "힘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미 올 시즌 없는 살림에 선수들 멱살을 잡고, 짜내고 짜내 K리그2 4위, FA컵 결승까지 올린 전 감독이었다. 다음 시즌에도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벌써부터 핵심 자원인 김현욱 황기욱 박찬용이 타팀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황이었다. 전 감독이 요청한 선수 영입은 고사하고, 구단은 기존 자원들까지 보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코치진까지 정리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전 감독에게 FA컵 우승은 '생존'이었다. 살려면 우승해야 했다. 그래야 영입 자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고, 다시 다음 시즌 승격에 도전할 수 있었다. 아시아 최고 무대에 선다는 '설렘' 보다 다음 시즌을 향한 '절박함'이 더욱 컸다.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전 감독이 '우승 아니면 물러나겠다'는 마음으로 사표를 가슴에 품은 채 결승 2차전을 치른 배경이다.

전 감독의 마음이 통했는지 전남 선수들은 무서운 투혼을 발휘했다. 비록 상대가 이른 시간 퇴장으로 한명 부족하기는 했지만, K리그1 3위팀을 만나, 그것도 원정에서, 무서운 추격을 이겨내고 2부리그 사상 첫 FA컵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4대3 극적인 승리. 드라마 같은 우승이었지만, 전 감독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우승의 기쁨을 마냥 즐기기에는 앞에 놓인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전폭적인 지원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안팎에서 들리고 있다. 구단도 모기업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 상황이기는 하지만, 축하연 이야기 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전남의 상황은 여전히 춥다. 전 감독이 우승을 하고도 웃지 못하는 이유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